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침술, 그 역사와 효과에 대하여

제목 : 침술, 그 역사와 효과에 대하여

부제목 : 한의학이라는 인습은 이제 과학적 근거에 의해 철저하게 해체되고 퇴출되어야 한다



‘스네이크오일사이언스(Snake Oil Science: The Truth about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와 ‘사기냐 치료냐(Trick or Treatment : The Undeniable Facts about Alternative Medicine)’
▲ ‘스네이크오일사이언스(Snake Oil Science: The Truth about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와 ‘사기냐 치료냐(Trick or Treatment : The Undeniable Facts about Alternative Medicine)’


※ 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에 소개드리는 자료는 '합리주의자의 道' 사이트 운영자인 김진만 선생님께서 2011년경에 작성하셔서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당시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에 보내주셨던 침술 관련 종합 보고서입니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황의원 원장이 편집하였으며, 일부 각주 내용도 추가했습니다.

김진만 선생님은 인터넷에서 한국어판 ‘회의주의자 사전’ 편찬을 주도하셨던 분으로, 2000년을 전후로 한 초창기 인터넷 시대의 대한민국 1세대 과학적 회의주의자로 평가되는 분입니다([포커스]한국에 상륙한 과학적 회의주의). 김진만 선생님은 현재 생명과학 분야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자(김진만) 일러두기 :

이 글은 에드짜르트 에른스트(Edzard Ernst) 교수와 사이먼 싱(Simon Singh)의 저서인 ‘사기냐 치료냐(Trick or Treatment : The Undeniable Facts about Alternative Medicine)’(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습니다.)의 'chapter 2 : Acupuncture'와, 바커 바우셀(Barker Bausell)의 ‘스네이크오일사이언스(Snake Oil Science: The Truth about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역시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및 최근의 침술관련 논문을 바탕으로 정보를 요약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침술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그대로의 침술이며, 전기침, 수지침 혹은 이침(耳針)과 같은 변형된 침술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어차피 국내에는 전통적인 침술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침술의 역사

침술의 기원
아시아에서의 기원
- 아이스맨 ‘외치(Oetzi)’
- 중국과 한국에서의 침술 및 경락(經絡)의 발전
침술의 유럽 전파
침술의 몰락
침술의 부활
침술의 미국/유럽 재전파
- 제임스 레스톤의 경험
- 이사도어 로젠텔트와 침술마취
- 세계보건기구(WHO)의 침술 보고서

2. 침술의 효과

사이비 사례 1. 글리옥실라이드
사이비 사례 2. 메스머의 동물자기
침술에 대한 임상시험의 기술적인 문제점
임상시험에서 플라시보의 중요성
믿을 수 없는 세계보건기구(WHO) 2차 보고서
믿을 수 있는 코크란연합의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들
침술의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질환들
통증완화에는 침술이 효과가 있는가?
침술의 몰락, 한의학의 몰락
결론

각주


1. 침술의 역사

침술의 기원

아시아에서의 기원

침술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침술이 어떠한 원리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침술의 기원이 중국인지 한국(중국이 규정했던 동이(東夷)가 지배했던 땅)인지는 아직도 명확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중국은 기록이 풍부하여 심지어 우리나라가 침술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중국의 문헌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헌과 추정에 근거하여, 어떤 사람은 4천년 전에 침술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3천년 혹은 2천년 전에 침술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침술의 오랜 기원으로 알려진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원전 2천 6백 년 전의 전쟁 중에 다리에 화살을 맞은 군인이 운이 좋게도 어깨의 통증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THE ORIGIN& HISTORY OF ACUPUNCTURE", Dr. Manik Hiranandani)

다리에 화살을 맞은 것과 어깨통증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질환은 고쳐졌기 때문에 이것을 발전시켜서 침술이 시작되었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 한국 모두에서 실질적인 기원으로 생각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침술이, 폄석(砭石)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폄석은 우리 몸에 난 고름 같은 것을 제거하기 위한 날카로운 칼처럼 만든 돌입니다. 이러한 폄석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흔하며,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미 폄석이 몸의 일부를 찔러서 병을 치료하는데 쓰는 돌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는 아무래도 간접적이며, 직접적으로 침술에 대한 글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황제내경(黃帝內經)’입니다.

일부에서는 ‘황제내경’이 단군과 같은 시대 중국을 다스린, 황제(黃帝)가 썼거나 황제의 기록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오늘날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은 중국의 일부 국수주의자들 말고는 없습니다. 학자들은 특정 단어의 사용 등을 근거로 ‘황제내경(黃帝內經)’이 당나라 시기까지 계속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완성되었으며,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도 기원전 2세기 보다도 더 오래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침술은 대충 2천 백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제내경(黃帝內經)’
▲ ‘황제내경(黃帝內經)’


‘산해경(山海經)’에 수록된 반인반수(半人半獸). 산해경은 사실상 신화집에 가까운 내용이다.
▲ ‘산해경(山海經)’에 수록된 반인반수(半人半獸). 산해경은 사실상 신화집에 가까운 내용이다.


‘황제내경’에서는 침술이 동방에서 유래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중국은 중국의 동부라고 말하고, 우리나라는 그 지역은 원래 중국 지역이 아니라, 동이(東夷) 지역이었으므로 고대 한국이 침술의 발생지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산둥지방에서 반인반조(半人半鳥)의 생명체가 사람을 침으로 찌르는 것이 묘사된 그림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침술이 지리적으로 중국의 동방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산해경(山海經)’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산해경’에 고 씨의 산 아래에 폄석이 많다는 글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 고 씨의 산을 백두산으로 해석하여, 한국에서 침술이 유래한 또 하나의 증거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폄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의술용 침을 말하는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인데 사실 ‘산해경’은 신화집에 가까운 내용으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문헌으로 믿기에는 문제가 많아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책입니다.[1]

고고학적으로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바늘침 같은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침술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해석을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바늘침만 발견되면 이것이 어떻게 사용되었을 것인가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고 무조건 침술의 증거로 인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몸 안의 고름을 짜내기 위해서 바늘침을 찌르는 것은 지금도 당연한 것이고, 시골에서 유리조각이나 기와조각 같은 것으로 상처를 째서 고름을 나오도록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졌겠지만, 중국의 시골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합니다. 과거의 중국인들이 손의 고름을 짜낼 때 고름이 있는 곳이 아니라 경락을 따라서 바늘침을 찔렀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폄석과 침술의 관계는 그다지 밀접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은 경혈과 경락을 논하는 정통 침술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대에는 바늘침을 문신을 하는데도 사용하였으며, 특히 노예들에게 문신을 하여 그들을 구분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바늘침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통상의 침술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단정을 짓기는 어렵습니다.

고대의 중국인들은 병은 몸 안에 귀신이 들어와서 생긴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바늘로 찔러서 살에 구멍을 내서 귀신이 나가기를 바랐습니다. 따라서 비록 고대의 침술이 침을 찔러서 병을 고치려는 시도라고 해도, 그것을 경혈, 경락 이론과 연계된 한의학적 침술의 기원 혹은 발전과정이라고 보기엔 사실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침술의 기원, 특히 의학용 침술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여하튼 저런 형태의 침술이 고대 중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널리 사용된 것은 분명합니다.

고대의 침술이 중세나 오늘날의 침술과 어떤 연계성을 갖고 있는지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여하간 중국은 청나라에 접어들어서면서 바늘침으로써 치료를 시도하는 형태의 침술이 쇠퇴기를 맞게 됩니다.

중국의 장궁야오 교수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청대의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古今图书集成·醫部全錄)'[2]에서 풍문(风门) 총 153페이지 중에서 단지 6페이지에서만, 상한문(伤寒门) 총 525페이지 중에서 단 11페이지만 침술을 언급했으며, 如寒门, 暑门, 燥门, 痰门, 瘟疫门, 中蛊门, 种子门 에서는 침술을 언급한 것을 볼 수조차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중국에서 청나라 시대에 이미 서양의학과 접하게 되면서 침술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属针出现之前的针灸, 2010年12月5日, 张功耀)
 

장궁야오 교수의 블로그 ( http://zhgybk.blog.hexun.com )
▲ 장궁야오 교수의 블로그 ( http://zhgybk.blog.hexun.com )


아이스맨 ‘외치(Oetzi)’와 관련한 사우스 타이롤 박물관의 홈페이지 자료(South Tyrol Museum of Archaeology, http://www.iceman.it/en/oetzi-the-iceman)
▲ 아이스맨 ‘외치(Oetzi)’와 관련한 사우스 타이롤 박물관의 홈페이지 자료(South Tyrol Museum of Archaeology, http://www.iceman.it/en/oetzi-the-iceman)


아이스맨 ‘외치(Oetzi)’

지금까지 침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마치 중국에 있는 것처럼 얘기했습니다. 헌데 사실 침술의 기원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일은, 의외로 1991년 유럽의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인 외츠(Oetz) 계곡에서, 일반인들에게는 아이스맨(Ice man)이라고도 알려진 ‘외치(Oetzi)’라는 미라가 발견된 것과 관계됩니다.

외치는 온 몸의 곳곳에 문신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문신은 어떤 문양이 나타나기 마련이므로 이 미라의 문신은 마치 침술 시술을 받은 것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몇몇 침술 전문가들이 이 문신의 위치가 대체로 침술에서 침을 놓는 위치와 같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고대인들의 생각이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외치의 몸의 어딘가에 만성 통증이 있었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몸의 어딘가에 침을 놓았다는 것이, 아마도 그의 몸에 있는 문신에 대한 가장 쉬운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침점의 위치가 허리 통증이나 배가 아플 때 놓은 곳과 일치했고, 해부학적으로도 그가 만성통증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치의 몸에 나있는 문신이 침술과 관련이 있다는 추정에는 나름의 합리성이 있었습니다.

외치의 발견으로 결국 침술의 기원이 동양의 중국이나 한국이라는 설명은 빛을 많이 잃게 됩니다.

중국과 한국에서의 침술 및 경락(經絡)의 발전

단순히 통증 부위에 침을 놓는 것과 같은 기술이 경락(經絡, meridian)이라는 한의학 이론과 결합하여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침술로 발전되는데, 경락도 역시 근거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경락은 모두 12개라고 합니다. 또는 14개라고 하기도 합니다. 일단 5장 6부에 해당하는 경락은 모두 12개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락이 12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경락은 해부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해부학적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경락을 그냥 12개라고 정의했습니다(Meridian (Chinese medicine) (WIKI)).

왜 경락이 12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2 라는 숫자는 4 로도 나누어지고 3 으로도 나누어어지고 6 으로도 나누어지는 등 매우 편리한 숫자이기는 합니다. 자연이 이런 사람의 생각에 맞추어서 12개의 경락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우스운 일입니다.

우선 경락이라는 것은 ‘기(氣)’가 흐르는 강으로 정의됩니다. 기를 ‘물(水)‘이라 생각하면, 물이 흐르는 통로인 강이 바로 경락입니다. 경락이 왜 12개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변 중에서는, 중국의 큰 강이 12개(흔히 12마리의 용이라고 표현됨)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으며, 1년 12달이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한의학에서 인체는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헌데 더 정확하게는 우주의 축소판이 아니라 중국의 축소판입니다. 중국에 큰 강이 12개고, 경락도 12개라는 것은, 우연치고는 재미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기(氣)’가 우리 몸의 혈액과는 다른, 보이지 않는 실체라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만약 ‘기’가 혈액이라고 했다면, 경락은 혈관이 될 수밖에 없고 혈관을 찌르면 마구 쏟아지는 혈액을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충 그럴듯한 데 골라서 찌르고 효과가 나타나니까 경락이라는 것을 만들어 설명한 것이 고대의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침을 놓는 자리를 365개를 맞추어 놓기도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1년의 길이와 같습니다.

침술의 유럽 전파

침술이 최근 들어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침술이 20세기에야 유럽과 미국에 퍼졌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실은 침술은 이미 수백년 전에 유럽에 전파되었습니다.

침술이 정확히 언제 유럽으로 건너갔을까요? 서양에서 동양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새로 열린 후 침술은 서양인에게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침술이 유럽에 전파되었는데, 1683년 동인도 회사에 근무하던 빌헬름 린네(Wilhelm ten Rhyne)이라는 의사가 침술에 대한 라틴어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때 바로 침술의 영어 단어인 ‘acupuncture’라는 단어도 만들어집니다.
 

빌헬름 텐 린네(Wilhelm ten Rhyne)에 대한 위키 항목
▲ 빌헬름 텐 린네(Wilhelm ten Rhyne)에 대한 위키 항목


엥겔베르트 캠퍼(Engelbert Kaempfer)의 ‘회국기관(Amoenitatum Exoticarum)’
▲ 엥겔베르트 캠퍼(Engelbert Kaempfer)의 ‘회국기관(Amoenitatum Exoticarum)’


그 이후로 약 20년 뒤에, 일본을 다녀온 독일의 박물학자이자 의사였던 엥겔베르트 캠퍼(Engelbert Kaempfer)는 1712년 ‘회국기관(Amoenitatum Exoticarum)’이라는 독일어 저서에서 일본에서 침술은 반드시 한의사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역시 널리 사용하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대략 이 시기부터 유럽의 의학계도 침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19세기에는 의사였던 루이 요셉 베를리오즈(Louis-Joseph Berlioz)[3]가 침술이 근육이나 신경이완에 좋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고, 혹시 침의 효과가 죽은 개구리 다리 근육에 전기 자극을 했을 때 다리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신경자극 효과가 아닐까 추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침술이 기와 경락이 아니라 인체의 전기 신호를 가로막거나 흐르게 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별것 아닌 아이디어 같지만 당시에는 아주 대단한 사고로 여겨져서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침술하면 전기를 통하게 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버릴 정도로 흔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침술은 유럽에서 아주 널리 퍼져서, 지금도 저명하지만 당시에도 저명한 의학 학술지였던 ‘랜싯(Lancet)’에 1836년 음낭이 부은 것을 침술로 치료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가 됩니다.

물론, 이런 것은 의과학계의 일이고, 일반 사회에는 기이한 아이디어가 더 빨리 퍼지는 법이기도 합니다. 당시 귀족들과 같은 호사가들이 유럽에서 침술과 관련된 유행을 주도했습니다. 유명한 귀족이었던 조지 오브라이언 윈드햄(George O'Brien Wyndham)은 침술로써 자신의 좌골신경통이 고쳐졌다고 확신을 했습니다. 이에 아예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경주마의 이름을 ‘Acupuncture’라고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침술의 몰락

1840년대가 되면 침술이 서양에서도 주류의학으로 들어오기 직전의 상황이 되는데, 하지만 이때 갑자기 침술 유행이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중국과 영국간의 1차, 2차 아편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실 아편전쟁과는 별개로 당시 영국인과 중국인 사이에는 서로를 ‘야만인’으로 비하하는 문화적 하대가 아주 극심했습니다.[4]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인들이 침술을 좋게 바라볼 리가 없는 것이고 침술도 원시 야만의 습성이라고 평가절하되면서 유럽에서 빠르게 사라지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서양에서 침술이 사라지는 시기에 중국에서도 동시에 침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편전쟁 당시의 중국의 황제였던 도광제(道光帝)는 서양의 과학을 받아들이면서, 침술이 의과학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해서 황실의 의료 문제를 다루는 태의원(太醫院, Imperial Medical Institute)에서 아예 침술과 뜸술을 없애 버립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침술은 서양에서는 거의 완전히 사라졌고, 동양에서도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서 쇠퇴하고 있었으며, 의학으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1914~1929년 사이에 정부의 관리자들의 제안에 의해서 침술이 불법이 됩니다. 1930년대에는 한의학(中醫學)에 대해서 다시 논쟁이 벌어졌지만, 당시에도 침술을 다시 살려 내야 한다는 논의는 극히 드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5] [6]

하지만, 상황은 이후 극적으로 반전됩니다.

침술의 부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국민당간의 전쟁에서 결국 공산당이 승리하고 마오쩌둥(毛澤東)이 1949년 중국에서 독자적으로 정권을 잡습니다. 사실 국민당이 한의학(中醫學)을 중요시했고, 공산당에서는 원래 한의학을 무시했습니다. 헌데, 마오가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은 후에는 상황이 복잡 미묘해졌습니다. 현실적으로 중국 국민에게 어떤 식으로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당시 중국의 의학의 수준도 무척 떨어졌고, 일단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입니다.

마오쩌둥은 공산주의자답게 이데올로기로 승부를 겁니다. 즉, 한의학을 발전시켜서 서양의학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면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으로 한의학을 부흥시키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침술은 물론이고 약초요법이나 기타 많은 한의요법을 지원함은 물론, 당시 있던 한의사들을 모아서 풀뿌리 조직을 만들고 그들을 통해서 중국의 인민을 보살피게 했습니다. 이른바 '맨발의 의사'라 불리는 이들이었습니다.[7]

사실 당시에 서양의학을 하는 의사들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한의사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서양의학까지 교육시켜서 서양의학을 배운 한의사를 배출하여 중국 인민의 보건을 책임지게 하려 했던 마오의 생각 자체는, 정말로 그렇게 시스템을 제대로 혁신해갈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선 당시 중국의 의료 현실에서는 나름 합리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한의학을 중요시하며 그것을 서양의학과 동등한 수준으로 놓았던 마오의 생각은 중국인들에게 크나큰 자부심을 안겨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허나, 만약 저때에 마오가 한의학를 복원시키지 않았다면, 중국에서 침술과 같은 것들이 쉽게 되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도 지적되어야 합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장궁야오 교수같은 이들이 마오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하는데, 아직은 어렵지만 중국에서도 후일 마오의 정책에 대한 보다 균형감각 있는 재평가가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8]

사실 마오 집권 수십년 동안 중국은 이른바 '죽(竹)의 장막'에 가려져 있어서 외국인들은 그 안에서 도대체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중국에서 침술이 다시 부흥했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1972년, 중국의 설이 지나고 약 1주일 뒤인 21-28일 사이에 중국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드디어 '죽(竹)의 장막'이 걷히고 중국이 서방 세계에 얼굴을 내밀게 됩니다(1972 Nixon visit to Chin (WIKI)).

침술의 미국/유럽 재전파

제임스 레스톤의 경험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있기 전에 1년 전에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가 중국의 총리인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만나기 위해서 1971년 7월에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때,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레스톤(James Reston)이란 사람이 키신저와 같이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그는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아랫배 쪽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고열과 더불어 환각까지 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레스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맹장염이라고 하는 충수염(appendicitis)에 걸렸던 것입니다.

레스톤은 '반제국주의의원(反帝医院, Anti-Imperialist Hospital)'이라는 곳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습니다. 다행히 수술 결과는 좋았는데 이틀 뒤에 다시 배가 아파서 자신의 동의 하에 통증완화를 동반하는 침술 치료를 받게 됩니다. 당시 그를 치료한 사람은 영문 이름으로 리장유안(Li Chang Yuan)이라는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으로, 정식 의사가 아니라 한방사였습니다. 그는 레스톤에게 자신은 침술을 스스로 배웠고, 자신의 몸은 자신이 치료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침술을 권했습니다. 레스톤은 이 놀라운 경험을 ‘뉴욕타임스(NewYork Times)’ 1971년 7월 26일판에 '북경에서 내가 받은 수술에 대하여(Now about my operation in Peking)' 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싣습니다.[9] [10]
 

제임스 레스톤 기자의 뉴욕타임즈 기사 중 일부
▲ 제임스 레스톤 기자의 뉴욕타임즈 기사 중 일부


이사도어 로젠펠트와 침술 마취

레스톤의 기사는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는데, 레스톤의 기사가 나간 후 또 얼마 안 있어 백악관 주치의를 포함해 저명한 의사들이 침술의 효과를 보려고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때 있었던 일이 바로 이사도어 로젠펠트(Isadore Rosenfeld)라는 미국의 저명한 의사가 중국 의료진들의 가슴 수술 장면을 목격한 일인데, 당시 로젠펠트가 찍어온 아래의 사진은 그야말로 쇼킹한 것이었습니다.
 

로젠펠트가 찍은 사진
▲ 로젠펠트가 찍은 사진


위 사진은 로젠펠트가 중국 상하이의 한 병원에 갔을 때 촬영한 28세의 여성의 심장수술 장면입니다. 로젠펠트에 따르면 이 여자는 침술로 마취가 된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의사는 전기톱으로 갈비뼈를 자르고 심장을 볼 수 있도록 가슴을 열고 있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귓볼에 전기침을 이용해서 마취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로젠펠트에 따르면 그녀는 통증을 느끼지 않아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로젠펠트는 침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부러 칼라 사진을 찍었다고 고백했습니다.[11]

당시 최고 수준의 의사가 칼라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며 침술을 옹호하자 미국은 큰 훙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당장 의사들이 불안한 마취약보다는 침술을 이용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의 3일짜리 강좌에 등록하기도 했고, 또 수많은 침술용 침을 중국에서 수입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식약처는 이러한 침술 효과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그래서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텼습니다만,[12] 결국 여론과 정치인들의 압력으로 인하여 실험실 장비라는 이름으로 침술용 침의 수입을 허가하게 됩니다. 또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레이건도 침술을 의사의 허가 하에서는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까지 함으로써 미국은 가히 ‘침술 광풍’에 휩싸이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미국 식약처가 침술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아주 현명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후에 밝혀졌지만, 로젠펠트가 목격한 침술 마취는 사실상 사기극이었기 때문입니다. [13] [14] [15]사실 침술은 단순히 보조적인 조치에 불과하고, 이미 마취제나 진통제가 환자의 몸에 투여되어 있었습니다.

로젠펠트가 목격한 침술 치료에 대한 문제는 사실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은 꽤 오래 전부터 비판해온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선 사진의 여성의 표정이 이미 마취제를 사용한 것 같다는 것과, 수술의 위치가 심장수술에 적당한 위치가 아니라는 것, 가슴을 열면 호흡이 어렵기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써야 하는데 이 여성은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지 않다는 것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16]

하지만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로젠펠트의 사진 공개 이후 침술의 인기는 시들지 않았고, 결국 나중에는 미국의 마취과 의사들조차 침술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연구는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애매한 입장을 취해버리고 맙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침술 보고서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침술에 대한 많은 임상시험이 시도되었는데, 사실 그 결과는 얼핏 희망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줄여서 WHO)에서는 침술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그 보고서는 바로 '침술 : 세계보건기구의 입장(Acupuncture : the WHO View)'이라는 보고서인데, 1979년에 배너만(R.H.Bannerman)이라는 사람이 침술에 대한 효과에 대한 논문들을 총정리한 것입니다. 이 보고서에서 배너만은 침술이 20가지가 넘는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는 그래서 침술에 대한 대중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이 생기게 하는데 더더욱 일조하게 됩니다.

2003년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앞선 1979년의 보고서를 다시 갱신하여 '침술 : 임상시험들에 대한 총설과 분석에 대한 보고서(Acupuncture: review and analysis of reports on controlled clinical trials)'라는 제목으로 2차 보고서를 발표합니다(Acupuncture : review and analysis of reports on controlled clinical trials). 이 보고서는 이제 침술은 90가지가 넘는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침술 관련 보고서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침술이 효과가 있다고 믿도록 하는데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는데, 사실 저 보고서들은 하나같이 큰 오류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뒤에 침술의 효과를 다루는 챕터에서 다시 깊이 얘기하겠습니다.

영국의사협회(British Medical Association, 줄여서 BMA)의 조사를 살펴보면 2000년 전후까지도 현대의학을 하는 의사들 중에서 절반 정도가 침술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는 치료법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Acupuncture: efficacy, safety and practice - a BMA report). 다시 말해서 서양이라고 해서 침술을 무조건 안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문화적으로 유연한 의사들이 무척이나 많았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이 수시로 침술에 대해 비판을 해왔음에도, 이렇게 침술은 중국과 미국의 데땅트 이후 20세기 후반에 유럽과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퍼졌었던 것입니다.[17]


2. 침술의 효과

침술의 효과가 정말 있는가라는 문제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먼저 만약 침술 효과가 있다면 그 효과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한번 먼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일단 서양의 의사들 중에서도 침술의 효과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꽤 있긴 합니다. 침술의 효과와 관련되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나와 있지만, 그래도 그중 거의 유일하게 믿을만한 것은 그것이 통증완화에는 일부 효과가 있고 엔돌핀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18]

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럴듯한 해부학적 설명도 가능하니, 침술을 사용만 하면 되는 상황입니다. 이미 수많은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인정했는데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고려되어야할 문제는 과연 침술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가라는 점입니다. 효과가 있지만 미약하다면 다른 대안적 치료법을 시도하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헌데, 침술의 미미한 효과의 쓸모에 대해서 논하기 이전에, 물론 침술이 정말 효과가 있긴 한건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꼭 따지고 넘어가야할 것입니다.

통증에 대해서건 뭐에 대해서건 수많은 사람들이 침술이 좌우간 효과가 있다고 그럽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짜일까요? 혹시 단순 플라시보 효과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사이비 사례 1. 글리옥실라이드

이에 대한 답변은 사실 매우 복잡할 수도 있고 간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임상시험(Clinical Test)'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지 않다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치료법을 검증할 때에 과학자들은 임상시험의 설계와 과정, 결과를 살펴보고 임상시험이 얼마나 잘 수행된 것인지부터 확인합니다.

세세한 논리적인 설명에 앞서서 먼저 전체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겠습니다. 사실은 효과가 없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이 가능할까요?

정답은 가능하다 정도가 아니라 인간은 지금까지 늘 그렇게 잘못 믿어왔다는 것입니다. 효과가 없어도 효과가 있다고 믿어서 낭패를 봤던 사례가 한 두개가 아닙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1940년대에 있었던 "글리옥실라이드(glyoxylide)"와 관련된 소동입니다(Ethylene dione (WIKI)).

사실 분석 결과 증류수 이외에는 전혀 다른 성분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암을 치료한다고 확신했습니다(Cancer Quackery: Past And Present).

우리가 사이비의료(quackery)라고 부르는 많은 치료법들은 조사해보면 효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침술이 이 목록에 추가된다고 해도 놀랄 일도 아닙니다.

사이비 사례 2. 메스머의 동물자기(animal magnetism)

또 하나의 치료효과 오판 사례는 이러한 이야기에 항상 나오는 프랑스의 독일계 의사였던 프란츠 안톤 메스머(Franz Anton Mesm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메스머가 제시했던 동물자기(動物磁氣, animal magnetism) 이론 자체는 이제는 척봐도 엉터리임을 알 수 있을테니 더 이상 별 흥미거리도 아니지만, 메스머가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던 단초가 된 많은 환자들의 관련 반응은 지금도 흥미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메스머의 관련 치료법은 ‘최면’ 발견의 단초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메스머리즘(mesmerism)은 최면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헌데 하여간 메스머는 동물자기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정말로 자신이 동물자기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방법 중의 하나가 자기화(磁氣化, magnetization)된 물을 환자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환자들의 반응은 극적이었습니다. 갑자기 물을 마시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하였고, 쓰러지고 나서 다시 깨어났을 때는 몸이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메스머가 바라는 대로 많은 환자들은 마치 최면이 걸린 것처럼 행동했는데, 여기에는 실제로 글이나 책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성적인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메스머에 대한 비판가들은 그의 이론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우선 물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하게 자기화된다는 것, 또 동물자기가 치료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그런 현상들이 특정한 신념이나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암시(暗示)도 메스머의 환자들이 보였던 반응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결국,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왕립위원회를 소집하여, 메스머의 주장을 검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위원회에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 한 명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비가 오는 날 번개가 전기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연을 날렸다는 일화로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입니다. 당시 그는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였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메스머의 동물자기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했는데, 유리잔 5개를 준비해서 하나만 자기화시키고 환자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물론 예상대로 자기화되지 않은 물을 마신 환자가 물을 마시자마자 기절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물을 마신 여성이 자기는 자기화된 물을 마시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비슷한 모든 실험들을 마치고 왕립위원회는 자기화된 물이거나 또는 보통의 물이거나 전혀 상관없이 환자들의 반응이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화되었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며, 환자들의 반응은 단순히 환자들의 소망, 바람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메스머의 위대한 발견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아마도 메스머 자신도 스스로에게 속았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인간은 참으로 오묘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19]

메스머에 대한 최종 보고서는 최근에 과학적 회의주의자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의 해설과 함께 영어로 번역되어 인터넷에도 올라와 있습니다(Testing the Claims of Mesmerism : The First Scientific Investigation of the Paranormal Ever Conducted, with an introduction by Michael Shermer).

치료효과를 오판하는 사례들은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침술이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 그리고 그 효과라는 것이 플라시보 효과인가 아닌가라는 점은 계속 따져봐야할 문제입니다.

침술에 대한 임상시험의 기술적인 문제점

침술 치료 효과라는 것도 분명 임상시험에 의해 도출된 결과인데, 왜 그걸 플라시보 효과에 의한 것이라고 의혹을 가지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임상시험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히 플라시보 효과를 제거하도록 설계한 후에 수행되는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침술은 약품을 임상시험하는 것과는 달리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바늘침을 놓는 것과 안 놓는 것의 비교는 '플라시보 대조군(가짜치료에 의한 피험자)'을 두지 않는 임상시험이고, 지금껏 대부분의 임상시험이 이런 임상시험이었습니다. 이것은 제대로 된 임상시험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은, 바늘침과 외견상 똑같지만 하여간 바늘침은 아닌 것이어야 합니다.

대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것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우선 바늘침을 놓은 혈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찔러서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방법은 가짜 침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침을 누르면 살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침이 밀려서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흔히 '진짜 침술(true acupuncture)'과 반대되는 '플라시보 침술(sham acupuncture)'이라고 합니다. 이는 대체의학 연구의 대가이자 영국 엑시터(Exeter) 대학의 교수인 에드짜르트 에른스트(Edzard Ernst,[20] 영국식 이름으로 에자드 어네스트입니다. 참고로, 에른스트 교수는 독일 태생입니다)가 고안한 방법입니다.

이것만 해도 꽤 좋지만 더 좋은 것도 있습니다. 대개의 바늘침은 가이드라고 해서 두겹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 겉의 가이드는 떨어지게 되어있는데 이것에 접착력을 강하게 하여 떨어지지 못하게 하면 피험자는 진짜 침을 맞았는지 아니면 가짜 침을 맞았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이는 에른스트 교수의 지도를 받은 경희대 한의대 박종배 박사[21]가 1999년 논문을 통해 발표한 것입니다(Development of a new sham needle, Acupunct Med 1999;17:110-112 doi:10.1136/aim.17.2.110). 참고로, 논문의 제 2저자도 경희대 한의대 출신의 이혜정이라는 분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가짜 침의 개발로 인하여 드디어 침술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플라시보 침술법도 완전할 수는 없는 것이, 동양인이나 침술에 아주 민감한 사람은 피부를 뚫은 것과 단지 문지르는 것의 차이를 알아낼 수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술 임상시험의 최적의 대상자는 아직 침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침술 임상시험과 관련 더 심각하게 지적되어야 하는 것은 저 나름 개선된 가짜 침조차도 어찌해볼 수 없는 '이중맹검(Double Blind)'의 문제입니다.

사실 제대로 된 임상시험은 효과에 대한 오판이 없도록 하기 위해 시술하는 의사조차 속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것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늘 나오는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오래 전 '영리한 한스(Clever Hans)'라는 이름의 말이 숫자를 계산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 말은 사람의 표정을 읽고 답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단지 1/4mm 정도 움직이는 미묘한 표정의 차이까지 그 말은 감지했다는데, 물론 사람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도 목소리 톤이라든지 표정 등 미묘한 분위기로 상대방의 내심을 파악해냅니다. 이런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아무리 의사가 의도적으로 시술 행위의 진위 여부를 환자에게 숨긴다 하더라도 숨겨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피술자와 시술자 모두 어떤 시술을 했는지 모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침술은 그것을 구현하는 시술자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밖에 없고 그 사실이 비언어적인 형태로 피술자에게 전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100% 완전한 임상시험은 아직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침술 연구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앞으로 한참 지나서 나중에 로봇이 침을 놓으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저러한 가짜 침을 개발한 에른스트 교수나 박종배 박사는 모두 침술이 치료 효과가 있음을 밝히기 위해서 가짜 침 등을 개발한 것이지, 침술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대조군 도구를 개발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초기 논문 대부분은 침술이 그래도 효과가 약간은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침술이 대부분의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있기는 한 것으로 판명났다는데, 자,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나 효과가 있다는 것일까요?

임상시험의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좀 더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임상시험의 질적인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바커 바우셀(Barker Bausell)의 ‘스네이크 오일 사이언스(Snake Oil Science : The Truth about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라는 책에서 아주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임상시험에서 플라시보의 중요성

최적의 임상시험은 ‘이중맹검실험(Double Blind Test)’을 합니다. 여기서 이중맹검이라는 말은 환자 뿐만 아니라, 의사조차도 환자에게 제공하는 약이 어떤 것이 치료제이고 어떤 것이 가짜치료제(플라시보)인지 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임상시험에서 플라시보 혹은 맹검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가 ‘문맥-간정맥 문합술(portacaval shunt)’과 관계된 임상시험입니다.

이 실험은 상당히 유명해서 거의 대부분의 사이비의학 비판 서적에 사례로서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토마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의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How We Know What Isn't So)’이라는 번역서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에서 자료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40년대에 ‘Esophogal Hemorrhaging’(출혈성 질환 중 하나)를 치료하기 위해 ‘문맥대정맥문합술(portacaval shunt)’로 혈류를 우회시키는 수술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치료법은 효과가 다양하다는 연구에 근거하여 장내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사실 수술 자체가 길고 위험하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만, 어쨌거나 이 수술이 효과가 있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많이 수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이 수술이 효과가 전혀 없다고 밝혀졌습니다. 이는 법의학자들 덕분입니다. 법의학자들은 과거 ‘문맥대정맥문합술’로 수술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검시를 하면서 서로 연결했다고 생각했던 그 혈관이 사실은 막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수술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도대체 환자나 의사는 어떻게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믿었을까 하고 법의학자들이 의심을 품게되었습니다. 결국 상처를 내지만 실제 수술을 하지 않는 방법을 대조군으로 하는 등 무작위배정 기법 실험들을 수행해본 결과, 실제 수술을 하거나 또는 하지 않거나 결과가 같다는 것이 알려졌고 결국 이 수술법은 폐기되어 버립니다.
 


길로비치의 책에서도 지적하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임상시험은 수백 건을 수행했어도 제대로 된 임상시험 한 건을 대체하지 못합니다. 잘못된 임상시험이라도 여러 번 하면 대충 통계적으로 맞는 값을 찾지 않겠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준이 떨어지는 임상시험을 하면 대체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왔음에도, 제대로 된 임상시험을 하면 결국 효과가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무척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제대로 된, 우수한 임상시험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 우선 환자를 정해진 기준에 따라서 무작위 선발해야 합니다. 이것은 말이 쉽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대개 희망이 없어 보이는 환자는 대조군에, 희망이 있어 보이는 환자는 실험군에 넣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2) 더해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면 가능하면 대규모 임상시험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3) 다음은 맹검을 위해서 플라시보(거짓약, 거짓치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약은 플라시보를 만들 수 있지만, 물리적 치료법은 플라시보 처리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 부분을 완전하게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4) 그 다음은 탈락자가 적어야 합니다. 탈락자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에서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5) 이렇게 하고도 실험자들이 뭔가 실수를 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엄격한 심사를 하는 좋은 학술지에 투고하여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6) 그런 연후에 다음에 다른 임상시험에서도 또 역시 비슷한 결과가 재현되는지 확인을 해봅니다.

이랬을 때에 그 결과는 드디어 믿을만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침술 관련 임상시험에서 수준이 높은 임상시험은 극히 드물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침술 임상시험의 결과에 대해서 확신까지는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바우셀 박사에 의하면 이러한 수준 높은 임상시험은 전체 500건이 넘는 침술 임상시험에서 채 10건도 되지 못하며 그 모두 침술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침술 관련 임상시험은 대부분이 플라시보 대조군이 없는 가장 낮은 수준의 임상시험이지만, 최근 20년 동안에는 그래도 비교적 우수한 임상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 대체의학을 지원하는 법이 만들어지고, 작년(2010년) 기준으로 우리돈 1조 5천억원이나 되는 돈이 지원되면서 임상시험이 활발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체의학의 경우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치료법을 검증하는 것이 연구의 주목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비가 임상시험에 쓰였습니다. 대체의학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지만, 한의학에서 대체의학은 침술이 가장 대표적이고 침술에 많은 연구비가 지원되었기 때문에, 뛰어난 연구 결과가 드디어 우수한 학술지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바우셀은 자신의 저서인 '스네이크오일사이언스'에서 아주 우수한, 자신이 참여했던 임상시험도 소개해놓았습니다. 이 임상시험은 설계가 아주 흥미로운데, 가짜 침(플라시보)을 이용해서 침술 임상을 실시한 후에 자신의 무작위배정 임상시험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대조군에서는 대충 절반 정도가 자기가 진짜 침을 시술 받았다고 생각했고, 실험군에서는 약간 높았는데 아무튼 피험자들은 자신이 어떤 침을 맞았는지 잘 모르게 설계되었습니다. 그 결과 양쪽에서 뚜렷한 효과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라면, 일반적인 임상시험과 별 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이후에 바우셀은 자신이 진짜 침으로 치료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분리하여 그 효과를 다시 검증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자신이 진짜 침을 맞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효과가 우수하게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실제 침술은 효과가 없었다는 증거와 함께, 침술의 효과가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실험이었던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세계보건기구(WHO) 2차 보고서

아무래도 침술의 효과는 쉽게 믿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가지 더 검토를 하고 갈게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침술이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을까요?

세계보건기구의 침술 관련 1차 보고서는 지적할 가치조차 많이 떨어지니 논외로 하고, 여기서는 관련 2차 보고서의 문제를 지적해보겠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2차 보고서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매우 심각하게 잘못된 방법론을 이용했습니다. 중요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담당자는 객관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침술 관련 임상시험들의 질을 평가하지 않고 관련 모든 임상시험들을 거의 동일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많은 수의 임상시험들을 고려할수록 결론이 더 정확해질 것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세계보건기구는 몰랐던 것입니다. '양'이 중요한게 아니라 '질'이 더 중요합니다. 이 문제는 앞서 ‘문맥-간정맥 문합술’ 사례를 얘기하면서 지적했었던 문제입니다.

어떤 치료법이 효과가 있는가를 확인을 하려면 수많은 임상시험 논문들을 모아서 엄격하게 메타분석(meta analysis),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을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 논문들에서 보고된 임상시험의 질적 가치를 매겨서 체계적인 평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는 이러한 철저한, 체계적인 평가를 거친 종류의 보고서가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침술 관련 2차 보고서는 참고문헌을 살펴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중국에서 수행된 임상시험을 기록한 참고문헌이 상당수라는 것입니다. 293개 참고문헌 중에서 124개는 아예 중국어로 쓰여져 있는 논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학자들조차 중국 대륙에서 발간된 논문의 내용은 믿지 않는다는 점을 세계보건기구는 간과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행해지는 임상시험에 대한 신뢰수준은 극히 낮은 것이어서, 이점에 대해서 지적하는 아주 유명한 논문도 있습니다(Do Certain Countries Produce Only Positive Results? A Systematic Review of Controlled Trials)

아래는 바우셀 박사가 중국에서의 임상시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관련 논문 내용 중에서, 국적별 침술 관련 연구결과 성공과 실패에 대한 데이터를 정리한 자료입니다.
 


여기서 아시아권의 침술 임상시험은 98%가 항상 효과가 있다고 나오는데, 침술 효과에 대해 부정적으로 나왔던 단 1건의 논문은 스리랑카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한국의 통계는 없었습니다만, 저는 한국의 상황도 순전히 한국인들이 수행한 임상시험에서라면 거의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본다면 과거에 중국과 한국에서의 침술 임상시험 결과는 사실상 가치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각주에서 우리나라에서도 MRI 등을 이용해서 침술의 효과를 밝히고자 했던 한의사들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연구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그 결과를 발표했을까요?

대부분의 연구 결과는 성공한 것을 발표하는 것이지 실패한 것을 발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과학계의 모든 분야에 해당됩니다. 소위 '출판편향(publication bias)'이라고 지적되는 문제인데, 침술이 효과가 있다고 보고하는 논문이 계속 쏟아지는 데는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일 공산이 큽니다.

사실 임상시험의 경우는 실험실에서 연구원 혼자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설사 실패했어도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중국에선 침술의 효과와 관련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을 경우에는 발표하겠지만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을 경우에는 그것을 발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한의사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비록 잘못된 임상시험이라도 긍정적으로 나온 결과는 발표하지만, 부정적으로 나온 결과는 실험자의 미숙이라고 스스로 자책하고 발표하지 않을 것입니다.
 


‘출판편향’ 문제를 떠나서도 중국은 전체적으로 임상시험 수행능력이 떨어져서, 특히 제대로 된 임상시험을 거친 연구 내용이 논문에 담기는 경우가 여전히 드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침술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일반적인 백신이나, 기타 현대의학 치료법에 적용했었던 엄격한 잣대를 무시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도저히 정치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침술 관련 2차 보고서의 편향 문제는 더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고서에는 반대파를 포함시켜서, 소수의견이라도 피력토록 해야 하는데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를 작성한 패널들은 모두 침술 옹호파들만 있었습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의 2차 보고서에는 초안을 작성하고 수정하고 갱신한 사람은 주판지에, 영문명으로 Zhu-Fan Xie , 한자로 谢竹藩(사죽번)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사람은 중국 북경대학교 제일 부속의원 소속의 중서의결합연구소의 명예소장입니다. 중국의 검색포털 사이트인 바이두(BAID)에 올라와 있는 주판지에의 약력을 간략히 소개하면, 그는 중국 중서의결합연구소(中国中西医结合研究会) 발기인중의 한 명이며, ‘汉英常用中医药词汇’, ‘中医药词典’의 주 편저자인 것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가 철저하게 중국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특히 더더욱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중국에는 이른바 '꽌시('관계(關係)'의 중국발음)'라는 것이 있는데, 저 정도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특히 정치계의 꽌시를 이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뿌리 안 뽑히는 '꽌시(關係)'와 뇌물', 2007년 2월 5일, ‘노컷뉴스’(베이징 김주명 특파원)). 그러므로 그는 중국의 자존심을 거슬리는 발표, 특히 과거 마오의 판단을 비판하는 자료를 쉽게 발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22]

세계보건기구 2차 보고서의 첫 부분은 침술에 대한 임상시험이 플라시보보다 우수하다는 내용을 언급한 한 저명한 학술지의 논문을 인용합니다. 학술지가 매우 저명한 것이라서 마치 침술을 학계에서 인정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 논문 내용을 살펴보면, 비교 임상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플라시보 효과가 35%인데, 침술의 효과는 80% 이상이므로 침술이 효과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결국 플라시보가 뭔지도 모르면서 저런 논문을 인용한 것입니다. 통증은 플라시보가 가장 확실하게 나타나는 분야이기 때문에 침술의 플라시보는 다른 플라시보의 평균치보다 훨씬 높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세계보건기구의 침술 관련 2차 보고서는 과학적인 보고서라기 보다는 잘 쓰여진 정치적 연설문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믿을 수 있는 코크란연합의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들

그러면 반대로, 저런 수준이 떨어지는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가 아니라, 침술에 대한 정말 과학적인 분석, 체계적인 평가를 한 권위 있는 기관의 제대로 된 문헌들은 뭐가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에른스트의 저서와 바우셀의 저서에서는 모두 '코크란연합(Cochrane Collaboration)'의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들을 제시합니다.

에른스트의 저서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코크란연합(http://www.cochrane.org)은 인터넷의 거대한 네트워크로서, 바로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모임입니다. 이곳의 라이브러리와 데이타베이스에 침술과 관련한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들이 올라와 있으며, 침술로 검색을 하면 이제 80건이 넘는 문서가 검색됩니다. 에른스트는 이러한 체계적 문헌고찰을 주도한 여러 연구자들 중의 한 명입니다.

먼저 에른스트는 자신의 저서에서 침술과 관련 코크란연합의 여러 논문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즉, 다음과 같은 질환들에 대한,
(약물)중독, anxiety, circulatory problems, 우울증, 당뇨병, 안면회춘, 피로, gastrointestinal problems, 건초열, heart problems, 고혈압, 불임의 6가지 분류, 불면증, 신장 질병들, 간질환, 폐경기 문제, 생리불순, 임신 보호, 출산 유도, 입덧, 난산(breech presentation), 호흡계 문제들, 류머티즘, 성적문제, 축농증, 피부 문제, 스트레스 관련 질병, 비뇨기 관련 문제, 체중감소
코크란연합의 침술의 효과 관련 논문들은 바로 아래의 3가지 부류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없다.

2) 관련 임상시험이 너무 엉터리로 진행되어서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다. 

3) 연구설계가 너무 엉터리라서 체계적 문헌고찰을 할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

물론, 코크란연합의 논문들 중에서 침술 효과에 대한 결과가 아주 명백하게 나쁜 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결과가 담긴 논문들도 몇개 있긴 합니다. 우선 그 대부분은 앞서도 계속 얘기해왔지만 바로 통증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리고, 임신 중 골반 및 허리 통증, 허리통증, 두통, 수술 후 메스꺼움, 구토, 목 관련 문제, 야뇨증에는 얼핏 봐서는 침술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이 코크란연합 논문들의 내용입니다.
 


침술의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질환들

일단 침술의 효과가 있는 몇 가지를 검토하기 전에, 침술의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거의 확실한 것들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침술은 ‘수술 마취’에 전혀 효과가 없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앞서 로젠펠트가 목격했다는 침술을 통한 수술 마취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미 다른 수많은 임상시험 등에서 확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의학으로 치료를 하는 그 어떤 병원도 침술 마취를 통한 수술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서 확인되고 있는 상식입니다. 더 이상 우리가 로젠펠트가 본 여성이 마취가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 그것이 공모에 의한 사기극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긴 하지만, 어쨌거나 다른 그 어디에서도 재현(replication)이 되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기에 관심을 가질 필요조차 애초 없습니다.

또한 침술이 효과가 없다고 나타난 가장 대표적인 질환은 안면신경마비(顔面神經痲痹, Bell’s palsy, 다른 이름으로 구안와사)와 뇌졸중(腦卒中, stroke, 다른 이름으로 중풍)입니다. (Napadow V, Kaptchuk TJ. Patient characteristics of outpatient acupuncture in Beijing, China. J Altern Complement Med 2004; 10: 565~72.).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결과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침술은 통증완화의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가장 크게 언급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뇌졸중의 치료입니다. 뇌졸중이 발생했을 때, 의사를 찾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한의사를 찾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 ‘의료계-한의계, 뇌졸중 치료 주도권 다툼’, 2008년 3월 16일, ‘코리아헬스로그-청년의사’(유지영 기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2004년 중국 베이징의 두 병원에서 조사한 결과로도 가장 많이 침술을 사용하는 사례 역시 안면신경마비와 뇌졸중이었습니다. 허나 이 두 가지 질환 모두에서 코크란연합의 분석을 거친 임상시험의 결과는 모두 침술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He L, Zhou D, Wu B, Li N, Zhou MK. Acupuncture for Bell’'s palsy. The Cochrane Database of Systemic Reviews 2004; 1: CD002914.), (Zhang Sh, Liu M, Asplund K, Li L. Acupuncture for acute stroke.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05; Issue 2, CD003317.).

안면신경마비에 대해서는 임상시험의 숫자가 많지 않아서 아직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사실 안면신경마비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침술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 같습니다.

우선 안면신경마비, 구안와사을 두고 한의학에서는 ‘풍한(風寒)’의 사기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김성훈 한방 의원 상담/예약 게시판, '구안와사 환자는 반드시 읽어보세요.').
"구안와사의 원인은 풍한의 사기(병을 일으키는 나쁜 기운) 입니다. 양의사들은 이것을 바이러스라 하고 한의사들은 이를 풍이라고 합니다. 부르는 이름은 틀리지만 개념은 같습니다."

"당연히 사고 등에 의해서 수술이나 급성염증 등에는 양방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안와사라든지 만성병 등에는 한방치료가 더 효과적입니다."

"구안와사와 같은 마비성 질환은 재활치료가 중요합니다. 재활치료는 침치료가 가장 우수한 작용을 합니다."
한의사들이 말하는 풍이 바이러스라면, 중풍도 바이러스에서 오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개념이 비슷해보인다고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것이며, 사실 한의학에서는 바이러스가 뭔지 알지도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풍으로 표현되는 증상은 대개는 심혈관 계통의 문제이지 무슨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연히 이러한 영역의 문제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한의사의 도움을 받아야할 것이 아닌 것입니다.

뇌졸중 역시 한의학계에서 가장 효과를 자신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뇌졸중은 뇌의 혈관이 터지거나 막혀 일부 뇌세포들이 사멸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학계에서는 뇌세포에 문제가 생기는 시간을 최소화하여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한의학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이러한 치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것보다는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나마도 사실상 효과가 있다고 볼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실정입니다.
 


통증완화에는 침술이 효과가 있는가?

이제 다시 침술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침술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대개는 통증완화와 관련된 것들로, 이중에서도 허리통증에 대한 침술의 효과가 침술이 처한 위치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크란연합에서도 관련 논문이 있습니다. (Acupuncture and dry-needling for low back pain, The Cochrane Collaboration. Published by John Wiley & Sons, Ltd.).

해당 논문의 결론을 말하자면 침술이 만성 통증에 효과가 있기는 하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급성통증에는 침술의 효과는 임상시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효과를 알 수 없으나, 만성통증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쁜 소식은 그 효과가 매우 미약해서 다른 치료법의 부속치료 정도로서나 혹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결과를 두고서 어떻든 침술을 옹호하고 싶은 측이라면 부속치료로서건 뭐건 아무튼 효과라는 게 있긴 하니까 침술이 가치가 있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즉, 아주 미약하지만 효과라는 게 있긴 하고 그 효과가 플라시보보다는 약간 크다면 정말로 좋은 일이 아니냐는 것이죠.

하지만, 에른스트의 생각은 여기서 아주 다릅니다. 즉, 아무리 봐도 그 효과가 뭐라 평가해주기가 뭣할 만큼 미약하고 지금까지의 긍정적인 시선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 앞에서 말한 침술의 임상시험의 질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특히 '플라시보 침술(sham acupuncture)'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가짜 침을 동원한 임상시험은 앞서 말한 박종배 박사가 개발한 ‘Park's sham acupuncture’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박종배 박사가 개발했던 가짜 침은 에른스트 박사의 가짜 침을 개선한 것이었습니다. 그 개선된 최종 형태는 망원경 형태의 모습이며 제조상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그것을 실제 임상시험에서 사용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최근에야 ‘Park's sham acupuncture’ 의 방법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고 있습니다(Discrimination of Real and Sham Acupuncture Needles Using the Park Sham Device: A Preliminary Study, Archives of Physical Medicine and Rehabilitation Volume 90, Issue 12 , Pages 2141-2145, December 2009).

‘Park's sham acupuncture’에 의한 결과는 침술을 수년 동안 연구했고 침술에 관련된 수십 편의 논문을 써왔으며 또 박종배 박사의 지도교수이기도 한 에른스트를 무척 실망시켰습니다. 결과가 앞서 코크란연합의 논문보다도 더 나빴다는 것입니다.

에른스트 자신의 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하워드 모펫(Howard H. Moffet)의 2009년 논문에 따르면, '플라시보 침술(sham acupuncture)'과 '진짜 침술(true acupuncture)'은 차이가 없습니다(Sham Acupuncture May Be as Efficacious as True Acupuncture: A Systematic Review of Clinical Trials, The Journal of Alternative and Complementary Medicine).

구체적으로 본다면, 총 38건의 임상시험에서 19건의 임상시험에서는 플라시보 침술보다 진짜 침술이 약간 효과가 좋게 나왔습니다만, 13건 임상시험에서는 침술은 두 방법 모두 효과가 있었으나 효과가 똑같았고, 9건의 임상시험에서는 두 방법 모두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침술 임상시험에서 가짜 침을 찌르지 않고 문지르는 형태에서의 효과는 훨씬 낮았습니다. 최종적으로 논문의 저자는 플라시보 침술과 진짜 침술은 큰 차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에른스트가 분석한 플라시보 침술을 이용한 임상시험에 대한 메타분석 결과는 13건의 임상시험 중에서 4건의 임상시험에서만 가짜 침보다 효과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의미가 있는 결과는, 그가 선정한 임상시험이 모두 통증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고 뇌졸중 결과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 역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토 치료에 있어서도 효과가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통증에 있어서는 효과가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열을 가해서 통증을 가하는 임상시험에서는 효과가 있었고 다른 형태의 임상시험에서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에른스트는 플라시보 침술이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침술 임상시험의 효과는 진짜 효과가 아니라, 임상시험 자체의 문제일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독일에서의 침술 관련 대규모 연구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진행된 흔히 ‘Mega Trial'이라고도 불렸던 대규모 침술 관련 임상시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임상시험 결과는 이미 앞서 언급한 많은 코크란연합의 논문들에 참고문헌으로서 반영되어 있지만, 따로 간단히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의 대규모 침술 관련 임상시험은 2000년 10월부터 진행된 것으로, 이 임상시험이 진행된 이유는 불분명한 침술의 효과와 관련하여 보험회사가 계속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최종 결판을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독일 연방위원회에서는 무릎관절염, 허리통증, 편두통, 긴장성 두통에 대해서만 침술에 대한 보험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바로 여기에 대한 근거로서 진행되었던 임상시험이었습니다(Modellvorhaben Akupunktur – a summary of the ART, ARC and GERAC trials Mike Cummings, Acupunct Med 2009;27:26-30).

이 임상시험은 대규모였고, 무엇보다 제대로된 대조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임상시험이며, 장기간 진행되기도 했으나, ‘Park’s sham acupuncture‘ 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임상시험의 결과가 사실은 앞에서 서술한 많은 논문들에 이미 반영되어 있습니다.

저 임상시험은 여러 번 진행되었는데, 각각의 임상시험은 ART, ARC, COMP, GERAC 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우선 ART 임상시험은 특히 뮌헨과 베를린에 있는 연구진에 의해서 진행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ART 임상시험 중 긴장성 두통에서는 진짜 침술과 플라시보 침술이 모두 표준 치료법보다 더 나은 효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자들은 이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저 결과를 반대로 받아들입니다. 즉, 효과가 있었지만 플라시보 침술과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편두통에 대한 ART 임상시험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관절염은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는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효과가 인정된 임상시험이었습니다.

ART 임상시험의 경우, 논문의 저자와 일반 과학자들간의 침술 임상시험의 해석이 다른 이유는 앞서 말한 임상시험의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일반 의사들도 침술을 시술하는데, 이들만 해도 수만 명입니다. 당연히 침술을 시술하는 의사들이 이것이 계속 보험으로 지원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섰을 여지가 있고 당연히 논문의 결론은 과학적인 결론이 아니라 사회정치학적인 결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flections on the German Acupuncture studies, Journal of Chinese Medicine N.83 Feb 2007).

침술이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플라시보 침술이 비록 대조군이라도 그 역시 또 하나의 다른 침술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이해관계 측면에서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 임상시험의 결과로 독일에서 허리 통증이나, 무릎의 관절염의 경우는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긴장성 두통과 편두통은 결국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논문들을 읽다가 보면 독자들로서는 그래도 통증완화에 대해서만은 침술이 무슨 효과가 있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구가 하여간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일단 분명히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통증 완화만 하더라도 그것은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침술 시술의 목적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침술은 통증완화 이외에 뇌졸중 등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또 지적되어야할 점은 침술이 설사 통증에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치료효과가 한의학 이론에서 예측하는 것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침술 치료를 받더라도 과연 한의학을 하는 한의사에 꼭 시술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낳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침술의 비용 대비 효과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만성통증에 대해서 효과가 있을 듯 없을 듯 하는 결과를 가지고 침술로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것보다는, 그냥 진통제를 처방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나 안전성 등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침술의 몰락, 한의학의 몰락

지금까지 한의사들이 호언장담하던 것과는 달리, 사실 유럽에선 침술이 서서히 몰락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제약 관련 신문인 ‘메디팜뉴스’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영국 침술 퇴출 위기' 한국은 어쩌나?', 2011년 3월 21일, ‘메디팜뉴스’(권영팔 기자)).
영국의 침술퇴출 위기 상황은 영국 웨일즈대학 백종국 교수가 “최근 영국 침구계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고 밝힌 데서 확인됐다. 백 교수에 따르면 지난 3월 1일 영국침사협회(British Acupuncture Council)는 3000여명의 침사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침술 치료 효과로 오심(Nausea), 구토(Vomiting), 긴장성 두통의 단기간 해소(Short term relief for tension type headaches), 치통(Dental pain), 무릎관절염(Osteoarthritis of the knee) 등 5가지 증상 외에 어떤 질병이나 증상에 대해 효과가 있다고 서면 또는 인터넷 등을 통해 광고하면 거래표준원(Trading standard agency)에 의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강력 권고했다고 한다. 백 교수는 또 “이 5가지 증상에 대해서도 그 효과는 일시적이라는 것과 침구가 보조요법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에서 통증완화와 관련 언급한 5가지 질환에 대해서도 침술이 효과가 뚜렷한 것이 없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바로 위의 기사[23]에 따르면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미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의 선진국에서도 그런 연구결과들을 받아들이면서 비슷한 사회적 반향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약초요법(생약, 약초, 한약재)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기회가 되면 따로 하겠지만, 참고로 2011년 4월 1일은 또한 유럽에서 중국의 약초로 만들어진 제품에 대한 공식적인 수입제한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amending, as regards traditional herbal medicinal products, Directive 2001/83/EC on the Community code relating to medicinal products for human use).

이미 15년 전에 공시된 이 내용은, 30년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고 최소한 15년간 유럽에서 사용된 약초만 수입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많은 한약재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 확실합니다 중국 측에서도 이를 당혹스럽게 여기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中药在欧洲面临生死劫 迄今无一例欧盟注册成功, 2010年12月05日).

이것은 ‘침술’과 ‘한약’이라는 한의학의 커다란 두 개 축이 유럽에서 거의 동시에 무너지면서 이제 한의학은 서양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론

침술의 효과에 대한 학술적 연구들의 결과가 거듭 부정적인 것으로 나오자 일각에서는 “플라시보 침술 역시 또 다른 침술이요, 그것이 플라시보건 뭐건 해당 시술을 통해 증세의 호전을 말하는 연구나 증언에도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나오고 있음을 말씀드렸던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침술의 개념을 마구 확대시키는 식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애초 우리가 검증을 하고자 했던 것은, 대개의 한의사들이 시술하고 있는 사회통념상의 침술, 그러니까 바늘침을 이용해서 경락을 따라서 혈자리에 바늘침을 놓았을 때 어떤 질환이 치료가 되거나 또는 통증이 완화된다는 한의학 이론에 기반한 침술이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침술에 대한 연구결과들은 적어도 한의학적 이론에 기반한 침술은 여러 질환들에 대해서 치료 효과가 사실상 전혀 없었고, 통증완화에만 효과가 약간 있는 듯 보이나, 그것도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결국, 여기서 안전하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침술, 즉, 기가 경락을 따라서 흐르고 어쩌고 하는 한의학적인 해석은 완전히 틀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짜 침을 이용해서 혈자리가 아닌 다른 곳을 찔러도 진짜 침을 이용해 혈자리인 곳을 찌른 것과 효과 면에서 차이가 없었고, 설사 찌르지 않고 약간만 눌러줘도 효과가 같았기 때문입니다. 침술에 대한 수많은 독립적인 연구 결과가 수렴하는 결론은 좌우지간 그렇습니다.

물론, 한의학적 이론과는 전혀 별개의, 통증완화와 관계된 단순 찌르기식 침술의 효과를 보고한 논문들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매우 낮은 설계수준의 임상시험에서는 침술의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났지만 설계수준이 높일수록 그러한 극적인 침술의 효과는 결국 사라졌습니다. 

저러한 결과는 단지 통증완화와 관계된 단순 찌르기식 침술의 효과조차도 대부분 플라시보 효과나 임상시험의 미숙에 의한 일이라는 것을 강력히 암시하는 것입니다.


각주 : 

[1] ‘산해경’은 고대 신화집이자 지리서입니다만, 사실 이런 신화집, 지리서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서들이 대체로 신뢰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사마천의 나름 훌륭한 작업도 없진 않지만, 전근대의 중국 정권들은 정권의 기록물에 대해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치열한 역사의식이 없었습니다. 중국의 전통은 그런 문제로는 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그냥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중국의 이런 역사의식 때문에 명나라의 ‘명나라실록’과 청나라의 ‘청나라실록’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원체 떨어져서 조선의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 일기’와는 달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되지 못했습니다.

[2]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古今图书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4대째 황제인 강희제때 편찬된 총 권수만 1만권의 방대한 백과사전입니다. 지리, 풍속, 의학, 종교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차석찬의 역사창고‘).

[3] 루이 요셉 베를리오즈는 루이 헥토르 베를리오즈의 아버지입니다. 루이 헥토르 베를리오즈는 '환상교향곡'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유명 작곡가입니다.

[4] 중국인은 중국인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부를 때 습관적으로 짐승이라는 의미로 오랑캐 이(夷), 적(狄)라는 단어를 씁니다. 중국인은 영국인을 대놓고 영이(英夷)이라고 불렀고, 이에 중국에 온 유럽인들은 중국인의 오만함과 인종차별에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중국 상해의 황푸공원에는 중국인과 개는 출입을 금지한다는 모욕적인 게시문(정확하게는 "서양인의 하인인 중국인을 제외하고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5번째 조항과 "자전거와 개는 출입금지"라는 4번째 조항)이 있습니다. 그것을 중국인은 흔히들 서양인의 중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증거로 제시하곤 하는데, 외국인을 습관적으로 오랑캐로 불렀던 관습만 보더라도 중국인의 서양인에 대한 오만한 하대가 한편으로는 서양인들의 저런 과격한 응수를 낳은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5] '아큐정전(阿Q正傳)'으로 유명한 20세기 초 중국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루쉰(魯迅)도 한의학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습니다. 그의 단편집 ‘납함(呐喊)’의 서문에는 루쉰의 자전이 실려있는데, 여기서 루쉰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기억하고 있던 옛날 의원들의 이론이나 처방을 새로운 지식들과 비교해 보고는, 한의학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결국은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한의사들에게 속은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에게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일본사 번역본을 통하여 일본의 근대혁명인 유신(維新)은 대부분 서양의학에서 발단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6]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영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사회주의자, 친중주의자였던 조세프 니덤(Joseph T.M. Needham)도 침술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니덤은 1942년부터 4년간 중국에 체류하면서 중국의 전통과학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사실 니덤은 유럽에서 근대과학이 탄생하기 이전의 중국 전통과학의 발전상에 대해서 호의적이었고, 중국의 전통과학이 근대과학의 탄생에 나름 기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의 침술, 점성술, 풍수지리에 대해선 사실상 사이비과학으로 간주했습니다. 체류 당시 중국의 분위기에 친중주의자였던 니덤이 영향을 받았을 개연성도 무시못합니다.

[7] 아이러니한 것은 마오 자신은 한의학를 사실상 믿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그가 한의학을 부흥시키기는 했지만 한약같은 것은 복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오의 주치인 리즈수이가 쓴 ‘마오쩌둥의 사생활(The Private Life of Chairman Mao)’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8] 중국 사람들은 마오의 업적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마오가 당시 열악한 상황에서 인민들에게 그래도 가장 적절한 의료행위를 제공했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호의적 평가들은 실제 침술 같은 의술이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 한의사가 효과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한의사들이 제대로 된 의학교육을 받았느냐 못받았느냐와 같은 핵심적인 문제는 완전히 논외로 두면서, 단지 인구수 대비 의사(한의사를 포함한)나 병원(한의원을 포함한)의 비율만을 따져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9] 참고로 이 기사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부제목인 "Now, Let Me Tell You About My Appendectomy in Peking"이 더 많은 사이트에서 검색됩니다. 

[10] 흥미롭게도 레스톤의 기사가 나갔던 7월 26일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줄여서 NIH)이 침술 마취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11] 인터넷에서는 레스톤의 사례와 로젠펠트의 사례가 혼용되어서 레스톤이 마치 침술마취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은데, 이 두 사건은 전혀 다른 사건입니다. 레스톤의 경우도 침술마취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맹장수술 이후의 통증완화 차원에서의 침술시술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12] 미국식약처(Food and Drug Administration, 줄여서 FDA)가 저런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내부에서 얼마나 고충이 있었을까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 식약처와는 달리 미국 식약처는 제약 시판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이며 과학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참고로, 유럽에서는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문제로 기형아가 태어났지만, 미국에서는 임산부들의 지독한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식약처가 이 약의 시판 허가를 하지 않아 기형아 문제가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13] 로젠펠트가 목격한 일과 관련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에 영국의 공중파인 BBC 는 대체의학 관련 시리즈 프로그램을 통해 또 한번 30년 전의 로젠펠트가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수술이 중국에서 이뤄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한의학을 옹호했습니다(OU on the BBC: Alternative Medicine). 

BBC의 대체의학 관련 시리즈에 대해서는 영국의 왕립과학협회 등에서 비판적인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좀 더 구체적인데, 환자의 모습에서 이미 일부 약을 투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약은 미디졸람, 드로페리돌 및 펜타닐이 혼합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비록 그 양은 작더라도 이 약들은 서로 효과를 증폭시키기 때문에 실제 효과는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비록 펜타닐은 마취제가 아니라 진통제이지만, 이 진통제는 몰핀보다 강력한 것이며, 테이프에서도 보이지만 국소마취제가 가슴이나, 수술 부위에 상당한 양이 쓰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BBC 에서 방송한 침술 마취에 대한 테이프는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Sanghai Film Studio, 上海电影制片厂)'라는 곳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것은 사실상 광고에 불과하지 무슨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사실들이 적극 폭로되면서 BBC 의 공신력은 크게 금이 갔습니다. 저명한 과학작가인 사이먼 싱(Simon Singh)도 관련해 BBC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A groundbreaking experiment ... or a sensationalised TV stunt?).

[14] 사이비의학의 속임수 기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돌팔이들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갑니다. 이는 과학자들조차 예외가 아닌데, 사실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으로 유명한, 초능력자가 아니라 단지 마술사에 불과했던 유리겔러(Uri-Geller)가 가장 속이기 쉬웠던 사람들이 바로 과학자들이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유리겔러가 속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바로 마술사들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유리겔러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수들은 쉽게 속였지만, '자니카슨쇼(Johnny Carson Show)'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자니 카슨 자신이 마술사 출신이었고, 그는 이러한 속임수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이 분야의 전문가인 마술사이자 과학적 회의주의자인 제임스 랜디(James Randi)에게 조언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학자라고해서 모두 다 유리겔러와 같은 이들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과학적 회의주의자인 리차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같은 이는 그런 속임수들을 잘 간파해냈습니다. 의사들 중에서도 처음부터 중국 침술의 사기극을 바로 간파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5] 사실 중국이라고 해서 모든 한의사들이 저런 속임수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침술의 효과에 혹해 중국을 방문한 많은 현대의학을 하는 의사들 대부분이 로젠펠트가 목격한 것과도 같은 기적 같은 효과를 더 목격할 수가 없었고, 일이년도 지나지 않아서 서양의 의사들은 침술의 효과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중국 측의 입장인데 , 중국 정부 산하단체에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침술로 벙어리를 고친다는 엉터리 주장을 버젓이 하면서 침술의 신비성을 일종의 프로파간다로서 계속 홍보하고 다녔습니다. 이 이유를 좀 알아야 필요가 있는데, 사실 중국 사람들이나 중국 정부에게는 보이지 않는, 숨은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마오의 역사적, 정치적 판단에 대해서는 함부로 비판적으로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화혁명 당시 마오에게 저항하는 많은 사람들이, 소위 '4인방'을 대표로 하는 홍위병들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희생자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정식 통계는 없지만, 대략 백만명 정도가 문화혁명 기간 중에 죽음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그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기간에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현재(2011년) 차기 중국의 주석이라고 꼽히는 이가 바로 시진핑(習近平)인데, 그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은 공산당 혁명 당시 마오를 도와서 특히 정보부 관련 일을 했습니다. 제갈량에 비유될 정도로 매우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으나 그도 1962년 소설 ‘류즈단(劉志丹)’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반당분자로 몰려 문화혁명이 끝난 1977년 복권될 때까지 무려 16년간 농촌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덩샤오핑(鄧小平)조차 문화혁명 당시에 자신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공개적인 자기 비판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살아남게 됩니다. 

이러한 중국 현대사의 거칠고 쓰라린 경험은 중국인들에게 분명 큰 트라우마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문화혁명이 끝난 것은 1969년이지만, 1976년에 마오 사망을 전후로 해서도 문화혁명의 잔재는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고 마오의 교시는 정책 노선으로서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사실 중국에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무도 말리지 않지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단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누굴 감옥에 보낸다는 것은 사실 우리나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입니다. 누군가가 극단적인 체제 전복 발언을 하고 그 발언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그걸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류샤오보가 201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중국 정부가 보여준 가혹한 태도를 보면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국의 강박증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에서도 이제는 장궁야오 교수 등을 중심으로 마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한의학 비판도 나옵니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에선 고위 정치인들은 마오와 관련된 일에 대해선 함부로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지 않습니다. 현재도 이러하니 1970년대의 상황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16]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이 로젠펠트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중국 여성이 수술 받는 원본 사진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로젠펠트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 비판의 글이 실린 '초정상현상대책위원회(CSICOP, http://www.csicop.org)'의 공식잡지인 ‘회의적인 탐구자(Skeptical Inquirer)’에는 이 사진이 없고 사진을 펜으로 다시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 

[17] 우리나라에 다시 침술이나 한의학이 유행하게 된 것은, 사실 우리나라 내부에서 자체적인 노력이 대단한 게 있어서라기보다는, 미국 등 서양에서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한국의 한의학계가 수시로 세계보건기구의 한의학 옹호 보고서를 인용하는, 사실상 사대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행태를 보이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추측해볼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선 1980년대부터 한의학이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특히 1999년 말에서 2000년 사이에 방영된 '허준'이라는 드라마가 한의학의 부흥에 미친 영향이 큽니다. '허준'은 사실상 거의 판타지 수준의 드라마였습니다. '허준'을 보다보면 서양의학사의 여러 유명한 사람들의 일화를 엮어서 마치 허준의 이야기처럼 꾸며 놓았다는 인상을 받는데, 특히 허준이 해부를 하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장면이고 그래서 시체 해부가 금지되자 밤마다 시체를 파내서 해부를 했다는 베르살리우스(Andreas Vesalius)의 일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부터 침술의 이론에 대해서 많은 과학적 연구가 있긴 했습니다. 특히 MRI를 이용하는 시도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효과가 나타나서 매우 좋아하기도 했는데, 바늘침의 방향을 바꾸자 효과가 없어져버려서 매우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MRI는 자석으로 만드는 장비라서 바늘침의 방향이 측정결과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었습니다. 

덧붙여, 우리나라에서는 경희대 한의대 출신의 류근철 박사가 세계 최초로 침마취로 맹장 수술을 한 것으로 홍보가 되고 나중에는 무려 카이스트 특훈 교수까지 지냈는데, 미국의 로젠펠트와는 달리 여기에 대해서 국내에선 아무런 비판적, 과학적 검증도 없는 점은 아쉬운 점입니다. (‘신기술 발명에 남은 인생 건 류근철 박사’, 2010년 9월 2일자, ‘세계일보’(정승욱 기자)).

[18] 이것은 침술뿐 아니라 많은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에 공통된 것으로 대부분의 플라시보는 엔돌핀과 같은 진통효과를 가진 호르몬이 작용하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19] 효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들은, 본격적인 치료법이나 치료약만이 아닙니다. 상황이나 장소도 그리 만드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가톨릭의 루르드(Lourdes) 성지입니다.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병의 치료를 위해서 방문하며, 정말로 완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기 의족을 버리고 나온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Lourdes (Skeptic's Dictionary)).

[20] 우리나라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학자입니다만, 사실 엑시터 대학의 에드짜르트 에른스트(Edzard Ernst) 교수는 근거중심의학을 배경으로 한 대체의학 연구의 세계 최고 권위 연구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학자입니다. 그는 현재 두개의 의학 학술지 편집장을 맡고 있고, 영국의 권위있는 시사지인 ‘가디언(the Guardian)’의 고정 컬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보완대체의학 검증의 1인자 '에드짜르트 에른스트(Edzard Ernst)'(과학중심의학연구원 번역)).

[21] 박종배 박사는 2011년 현재 UNC Chapel Hill 의과대학, 재활의학과 조교수로,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학교에서 석박사를 취득하였으며, 영국 엑시터 대학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Jongbae Jay Park, KMD, PhD, LAc). 

[22] 앞서 침술의 역사에서 많이 얘기했지만 좀 더 문화혁명 당시를 살펴보겠습니다. 1979년에 세계보건기구의 1차 보고서가 나왔고, 마오는 1976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보건기구 보고서에 언급된 중국에서 나온 대부분의 침술 연구 자료들은 사실 마오의 생존 시에 나온 것들임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오 생존 당시의 침술 연구 자료들은 문화혁명 당시 이른바 서양식 교육을 받았다는 의사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만 보더라도 쉽게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혁명 시기에 중국의 서양의사(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는 모두 부르주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그냥 복도 바닥을 닦는 청소부로 전락한 케이스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문화혁명시대의 중국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중국의 자료 검열 및 조작 문제는 일당독재가 여전한 중국에서 지금도 계속됩니다. 중국은 지금까지도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자의 수를 축소하고 있으며, 오히려 제대로 발표하는 사람을 문책하곤 합니다. 

제(김진만)가 얼마전 중국 체류 당시에 알았던 중국의 한 현대의학과 한의학과의 통합의원(중국에서는 ‘중서결합의원中西結合醫院’이라고 합니다)의 초급간부는, 1주일에 1시간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교육 내지 회의를 했고 1시간은 한의학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사람을 바꾸는 법입니다. 마오가 중국인들로 하여금 다시 침술을 믿게 했지만, 일단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면, 결국 그 자신도 억지로 자기 합리화를 하게 마련입니다.

[23] ‘메디팜뉴스’의 기사에서 백종국 교수라는 분이 전하는 영국의 침술 관련 상황과 에른스트(영국식 이름으로 어네스트) 교수의 연구결과 등을 소개하는 내용은 일단 팩트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가 고려수지침을 대단한 치료법으로, 기존 침술의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는 부분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련 조금만 더 살펴봐도 알겠지만 고려수지침(Koryo Hand Acupuncture Therapy)과 일반 침술은 별 차이가 있는 치료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백종국 교수라는 분의 경력에 대해서도 일단 검증이 필요해보입니다. 마침 '약업신문' 관련 기사의 코멘트들을 살펴보면 백종국 교수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비록 전공과 정확한 과거 학적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백교수의 신상과 관련된 글이 있습니다. 참고바랍니다('유럽지역, 침술효과에 회의적 인식 확대', '3월 21일, 약업신문'(이종운 기자)). 

국내에서 수지침은 유태우 씨가 고려수지침학회를 만들어 유행시킨 것인데, 유씨는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는 '보건뉴스‘를 통해 정력적으로 한약재와 침술 등 제도 한의학을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이 도대체 진짜 진정성을 갖고 하는 일인지 상대적으로 비제도권에 머물러있는 고려수지침을 앞세우기 위한 상술의 일환인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5대 한의학 치료법에 대한 과학적 평가 (과학중심의학연구원 백서) :

5대 한의학 치료법의 과학적 평가 : ‘한약’편

5대 한의학 치료법의 과학적 평가 : ‘한방물리요법’편

5대 한의학 치료법의 과학적 평가 : ‘부항’편

5대 한의학 치료법의 과학적 평가 : ‘뜸술’편

5대 한의학 치료법의 과학적 평가 : ‘침술’편


중국의 한의학 비판이론가 장궁야오 교수 관련 기사 :

한의학은 왜 퇴출되어야 하는가?

쇠퇴하고 있는 중국에서의 한의학

허위의학으로서의 한의학(中醫)

대한민국 한의학 폐지론

중국인 의사가 한의대생에게 보내는 편지



한의학의 과학적 검증 관련기사 :

침술은 과연 통증에 효과가 있는가?

한약의 독성과 부작용 문제에 대하여

유럽에서의 '한약 원인 신장병' 위기

의과대학에서의 “보완대체의학” 교육이 낳은 파행

'속' 침술 미신에 일침 놓기

‘경혈’과 ‘경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호주 로얄 멜버른 공대 '한의학과'의 진실

침술의 역사 : 엉터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중국산 '근거중심의학'의 문제점

침술로 불임(不姙)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엉터리 기사

침술은 ‘체외 수정’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가? 

침술은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왜 나는 침술에 대해 회의적인가

침술 : 바늘침이 사용되는 엉터리 치료법

침술 미신에 일침 놓기

뜸 치료법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의 ‘한약(herbal medicine)’

침술 메타분석

침술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울증에 침술이 효과가 있다고?

금연하려고 침을 맞겠다고?

‘이침’이 금연에 효과적이라고? 허튼 주장일 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