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금요일

아무 책이나 읽다가는 제명에 못 죽는다.

제목 : 아무 책이나 읽다가는 제명에 못 죽는다.

부제목 : '병원에 가지 말아야할 81가지 이유' 비판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앵무새처럼 떠드는 지식인들이 많지만 나쁜 책을 읽는 것보다는 안 읽는 편이 낫다. 나쁜 책을 읽는 것은 컴퓨터에 악성코드와 바이러스를 까는 일보다도 위험하다. 두뇌에 입력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그 책이 나쁘지 않다고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참과 거짓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특히 건강분야의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책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올해 9월에 출간된 허현회의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건강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여러주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현대의학의 실체는 제약회사와 의사들 그리고 여기에 동조하는 주류 언론까지 사람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병을 만들고 효과 없는 약을 처방하는 사기극이라는 무시무시한 음모론을 담고 있다.

언론도 이를 거들고 나섰다. 중앙일보연합뉴스머니투데이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서도 간단한 소개부터 적극적인 동조까지 보이고 있다.

특히 프레시안은 <제약사-병원-의사, 그 ‘죽음의 트라이앵글’> 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에서 “'현명한 의료쇼핑' 정도의 소비자 정보 차원을 넘어, 제약-병원-의사의 '3각 동맹 체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풍부한 자료를 담고 있다.”며 찬양하고 있다.

이 주장을 믿는다면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병원에 가거나 약을 복용하길 꺼릴 것이다. 병원에 가더라도 의사의 결정적인 충고를 무시하게 될지 모른다. 종교적 광신 때문에 아픈 아이를 치료받지 못하게 하다가 죽게 만들었다는 뉴스 속의 이야기와 같은 상황이 책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다.

기초의학 연구를 해왔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병원 신세를 많이 진 필자는 현대의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 책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기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쓰레기다. 책의 표지만 살펴봐도 이 책이 쓰레기보다 나은 점이라고는 냄비 받침이 필요할 때 임시로 쓸 수 있다는 점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깟 책을 찍어내느라 희생된 나무가 안타까워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그걸로 끝이면 좋겠지만 이 책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의학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그대로 믿는다면 방사성 폐기물 이상의 끔찍한 해악을 초래하게 된다. 사이비종교나 무속인의 꾐에 넘어가 자신과 가정을 해치는 사례들처럼 말이다.

무식함과 거짓말로 버무려진 이 책을 보면서 저자에 대해, 그리고 이런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세태에 대해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 표지에서부터 드러나는 오류들
 

<병원에 가지 말아야할 81가지 이유> 뒷표지
▲ <병원에 가지 말아야할 81가지 이유> 뒷표지


뒤표지의 ‘의학백과사전’이라는 자부심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는 아래 몇 줄만 읽어보면 금세 드러난다.

가장 먼저, 임신 중 철분이 부족해지는 현상은 철분을 통해 바이러스가 태아에게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철분제 복용은 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학과 과학적 상식에 비춰서는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저자가 철분과 바이러스의 의미 자체를 모르는 듯하다. 인체가 세균에 감염되었을 때 세균의 증식에 중요한 철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철분을 감춘다는 이야기를 주워듣고 잘 못 쓴 듯하다.

세균은 스스로 증식을 하는 생물이기에 철분 등의 물질이 필요하지만 바이러스는 아니다.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세포에게 자기 할 일이 아닌 자신과 같은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도록 명령을 바꿔 증식한다. 숙주세포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순한 물질에 불과하다. 실험실에서 세균은 영양물질이 담김 배양액으로 증식시킬 수 있지만, 바이러스는 그에 꼭 맞는 숙주세포가 있어야만 증식시킬 수 있다.

생물학을 조금만 공부한 사람들은 이 둘의 차이가 코끼리와 민들레보다 크다는 점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이 정도의 기본 상식도 없는 저자가 의학 이야기를 할 능력이 있을까? 아무튼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해열, 진통, 소염제 복용은 면역반응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그래서 중이염엔 소염제를 쓰지 말아야 할까? 그건 아니다.

면역반응이 항상 인체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벌에 쏘여 목숨을 잃는 경우는 벌의 독이 몸을 해쳐서가 아니라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이다. 감염성 질환에 걸렸을 때 고열이 나는 건 면역반응이지만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의사는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치료하지만 환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상식과 통계는 어디에 감췄나

이 정도 해두고 책을 펼쳐보자.

저자가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소개하고 있다. 여러 질병으로 약을 장기간 복용하다가 약을 끊고 채식과 과일 위주의 식사를 하며 가공식품을 피했더니 건강상태가 더 나아졌다고 한다. 이 경험을 근거로 즉시 황당한 결론을 내놓는다.
“내가 앓고 있던 질병은 대부분 약과 가공식품에 들어 있는 합성 화학물질의 부작용이었던 것이다.”
약을 먹고 증상이 좋아진 사람들도 있고,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약을 안 먹어도 건강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할 수 있다. 저자는 약으로 건강한 생활을 되찾은 대다수의 경우들을 무시하고 있다. 약을 먹고 좋아진 사람들은 워낙 당연한 일이라 책을 쓰지 않을 뿐이다.

이어서 저자는 의사들이 오히려 죽음을 앞당긴다며 합성 화학물질이 질병과 죽음의 원인이며 이 중에서 의약품이 가장 해롭다고 말한다.

기초적인 통계자료만 봐도 이 음모론은 믿기 어려워진다.

평균수명이 가장 긴 나라들은 의료시스템이 발달된 선진국이지 '합성 화학 물질'이 없는 후진국이 아니다. WHO의 자료를 보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태어난 신생아의 기대수명은 우리나라가 80세이지만 잠비아는 48세에 불과하다. 2009년에 60세인 사람은 우리나라의 경우 24년을 더 살 것으로 기대되지만 잠비아는 15년이다.

이 음모론이 그럴듯한지 간접적으로 확인해볼만한 방법이 또 있다. 정말 병원과 의약품이 나쁘고 그 음모를 대중들에게 숨기고 있다면 정치인, 의사, 약사, 과학자 등은 병원 치료를 꺼릴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이나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입원을 알렸던 언론 보도까지 사기란 말인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국방력의 핵심인 군인들을 위한 군병원은 현대의학의 음모에 속아 넘어간 걸까, 군인들마저 속이기 위한 것일까?

이렇게 기본 지식과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보이지 않는 책을 비판하는 작업은 고된 일이다. 틀린 부분이 한두 군데면 정정해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엉터리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 책 한 권 분량이 필요하다.

초음파 검사는 안전성이 불확실한 위험한 검사이다?

프레시안에서도 인용한 초음파에 관련된 부분을 확인해보자.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연방식품의약청(FDA)은 초음파가 아직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검사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 출혈 등 반드시 의료적으로 필요할 때에만 검사할 것을 권고했다."
저자가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잘못된 정보에 속아 넘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WHO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Ultrasound is considered a very safe procedure with minimal known adverse effects, and no radiation exposure making it widely used in antenatal care. Potential complications are related to cavitation, the formation of a bubble within a biological structure. The risk of cavitation is very low at the ultrasound intensities used for medical diagnosis.“ (http://www.who.int/diagnostic_imaging/imaging_modalities/dim_ultrasound/en/)
WHO에서는 초음파 검사가 아주 안전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캐비테이션(cavitation)이라는 생체 내에서 기포를 발생시키는 작용이 잠재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지 모른다고 추정하지만 의학진단에서 사용되는 초음파의 강도에서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암이 없는 사람을 암 환자로 오진해 죽음으로 몬다?

이 책에서는 ‘암 조기 발견이 불행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충격적인 사실은 조기 검진 등으로 암이 아닌 환자를 암으로 진단해 치명적인 절제 수술과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로 건강한 생명과 재산을 빼앗는 상황이 너무도 흔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저명한 의학 학술지인 JAMA에 2007년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1999년 1월부터 2005년 9월 사이에 폐암, 췌장암 등으로 진단받고 치료 도중 사망한 환자 658명 중 동의에 의해 86명을 부검한 결과 22명(26퍼센트)은 암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많은 환자들이 주류 의사들의 기계에 모든 걸 맡기는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치료법으로 귀중한 생명을 잃은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해당 논문을 보면 다음과 같이 결론을 요약하고 있다.
• Missed major diagnoses with potential impact on treatment and survival were noted in 26% of cancer patients admitted to an oncologic ICU(intensive care unit).
• Opportunistic infections and cardiac complications were the most commonly missed major diagnoses.
• Our findings underscore the need for enhanced surveillance, monitoring, and treatment of infections and cardiopulmonary disorders in critically ill cancer patients.
(http://www.biomedcentral.com/content/pdf/cc5782.pdf)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 암 중환자실의 암 환자들에게서 치료와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진단을 놓친 경우가 26% 있었다.
• 중요한 진단을 놓친 사례 중 기회감염과 심장질환이 가장 빈번했다.
• 우리의 발견은 생명이 위태로운 암 환자들에게 감염과 심폐질환에 대한 검사, 관찰, 치료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즉, 이 연구는 위독했던 암 환자가 사망한 시신을 부검한 결과 26%가 암 자체가 아닌 합병증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감시와 관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백신과 타미플루는 제약회사의 음모?

필자는 인플루엔자 연구를 해왔기에 81가지 이유 중 19번째 이유인 '독감보다 타미플루가 더 위험하다.' 부분에 특히 관심이 갔다.
"사실 사스, 조류 인플루엔자, 돼지 인플루엔자 등은 모두 같은 바이러스로,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만 반응하는 타미플루에 대한 효능이 계속 문제됐지만 이는 철저히 묵살된다."
조류 인플루엔자와 돼지 인플루엔자는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이지만 사스는 전혀 다른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에 속한다. 타미플루가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만 반응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사실 B형 인플루엔자에도 효과가 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타미플루에는 동물의 암세포와 발암물질, 중금속 등이 들어있고, 접종하면 알레르기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인플루엔자보다 백신이 더 위험하다."고 조사 이유를 밝혔다."
타미플루의 성분은 oseltamivir라는 물질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NA 단백질에 결합해 기능을 차단해 치료효과를 내는 치료제다. 반면 인플루엔자 백신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항원 단백질이 들어있어 접종하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되어 바이러스 감염 시 이를 물리칠 수 있게 하는 예방 목적으로 사용된다.

저자는 이렇게 전혀 다른 타미플루와 백신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조차 몰라 계속 두 용어를 뒤섞어 쓰고 있다. 뒤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백신을 옹호하는 의사들이 근거로 삼는 과학적 논거는 단지 백신을 접종한 결과 항체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러나 항체의 생성 여부, 항체의 기능, 항체의 존속 기간 등에 대해서는 과학적 연구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이 또한 거짓이다. 과학자들은 'X-레이 크리스탈로그래피' 라는 기법으로 생성된 항체가 항원에 결합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기도 한다. 아래는 2010년 사이언스지 논문에 실린 인플루엔자 HA항원과 항체가 결합한 모습이다. 필자가 소속된 연구실에서도 유사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비는 제약회사가 아닌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다.)

2010년 사이언스지 논문에 실린 인플루엔자 HA항원과 항체가 결합한 모습
▲ 2010년 사이언스지 논문에 실린 인플루엔자 HA항원과 항체가 결합한 모습


이 책의 일부분만을 지적했음에도 짧지 않은 분량이 됐다. 나머지 부분들도 엉터리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를 다 설명하려면 새로 책을 한 권 내야 할 판이라 이 정도에서 줄이기로 하자.

오류가 많은 책이라도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해로운 거짓들 사이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낼 수 없다면 거짓이 가득한 책에서 모르고 있던 새로운 진실을 배울 방법이 있을까?

바이러스와 악성코드가 컴퓨터를 망가뜨리는 명령을 내리는 경우와 같은 일이 당신의 두뇌에서도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머릿속에 진실로 받아들이면 위험하다.

전문가들의 설명과 상반된 주장을 접하거든 일단 의심하라. 그것이 진실인지 확인할 수 있기 전까지는 받아들이지 말고 최소한 판단을 보류해두어야 한다. 특히 당신의 행동과 선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더욱 세심한 주의와 합리적인 의심이 필요하다. 아무 말이나 무턱대고 믿다가는 사기를 당해 돈도 잃고 건강도 잃을 수 있다.

전문가들이 나서야 할 때
현대의학을 부정하는 엉터리 주장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잃게 만들 수 있는 책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대형서점의 추천도서가 되고, 비판 기능을 상실한 언론도 홍보에 동원되고 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 책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위험한지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직접 나서서 틀렸다고 일반인들에게 설명해주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이를 비판하는 일은 수고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헛소리를 뱉기는 쉽지만 이를 하나하나 검토하고 교정하는 일은 몇 곱의 수고를 필요로 한다. 개인이 나서서 비판을 전달할만한 창구가 마땅치 않은 현실도 넘기 힘든 걸림돌이다.

필자는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으로 과학적 비평 사이트 ‘사이언티픽 크리틱스’( http://scientificcritics.com )를 열었다.

정부나 관련 단체들이 해소해주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들에 대해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엉터리 헛소리들이 진실인양 떠돌고, 이 따위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암울한 현실을 개선해야하지 않겠는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쏟아지는 거짓정보로부터 위협받는 시대에 우리들 모두가 자신이 가진 지식과 지혜를 조금씩 나눈다면 서로를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사이트 운영에 적극적인 참여를 희망하시거나 제안, 기고 등은 kang@scientificcritics.com 으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