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경락 대뇌피질 기원론
부제목 :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7)
- 서범석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특보 webmaster@i-sbm.org
- 등록 2014.06.14 10:11:29
※ 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 글은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 한의학을 비판해온 문화비평가이자 과의연 특보인 서범석님의 시리즈 한의학 비판 글인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입니다. 서범석님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필치에 더해 한의학 문제를 바라보는 보다 풍부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귀한 원고를 투고해주신 서범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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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경락이나 경혈은 도대체 언제, 그리고 누구에 의해서 주장되기 시작한 것일까? ‘황제내경(黃帝內經)’이나 ‘명당공혈침구치요(明堂孔穴針灸治要)’ 등의 중국 고서적에 경락이나 경혈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당연히 그 기원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었는데, 와중에 다음 두 가지 가설이 유력하게 대두되었다.
첫번째 가설은 ‘경락 침자감전현상 기원론’이다. 이것은 시술자가 침을 놓을 때 피시술자가 느끼는 짜릿한 침감이 퍼져나가는 경로를 쫓아가다 보니 어느덧 경락이 발견되었다는 가설이다. 사실 이것은 기가 순환한 결과라기 보다는 침이 신체 내부를 침습하면서 모종의 신경 가닥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두번째 가설은 ‘경락 내경반관 기원론’이다. 이것은 고도의 내공을 쌓은 기공사가 수련시 자신의 체내 진기가 순환하는 경로를 쫓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락이 발견되었다는 가설이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수긍하기 어렵지만, 특히 후자의 경우 판타지적 요소가 지나치게 강하다고 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대 기공사들 역시 이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일 텐데, 그들에 관한 조사부터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조사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성립되기 어렵다. 왜일까. 중국 서적인 ‘황제내경’에 정신감염되어 있는 사람과 조선 서적인 ‘용호비결’에 정신감염되어 있는 사람이 돌렸던 기의 흐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경혈 표준화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경혈의 위치는 ‘지역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꿈을 꾸더라도 기독교에 정신감염된 자들은 그리스도를, 이슬람교에 정신감염된 자들은 마호메트를, 불교에 정신감염된 자들은 붓다를 만난다. 이것은 각 종교에서 주장하는 영적 현상, 영적 인식이라는 것이 선험(先驗)적인 것이 전혀 아니고 경험(經驗)적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매우 불행하게도 이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종교인은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에 감염되었으니까 한국말을 할 뿐이고, 영미권에서 태어나 영어에 감염되었으니까 영어를 쓸 뿐이다. 즉, 티베트 깡촌에서 서양 TV나 책 한 번 못 보고 자란 아이, 티베트 불교 이외의 여타 종교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를 듣거나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는 ‘붓다’나 ‘달라이 라마’ 등의 이미지만 두뇌 속에 존재하므로 자신의 꿈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누군가 실제로 자신의 몸 안에서 기를 순환시키고 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아는 대로 혹은 믿는 대로, 즉 자신이 정신감염된 대로 돌리고 있다.
경락이나 경혈 문제를 다룰 때 이러한 ‘지역적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시기적 차이’이다. 우리는 막연히 고대중국의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14경락(임맥과 독맥 포함), 361경혈이 고대로부터 확고부동하게 정해져 내려왔을 것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경락의 개수, 경혈의 위치 및 경혈의 소속 경락 등은 끊임없이 변화했기 때문에 그 차이가 비단 지역적 편차의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경락 및 경혈이 언제, 어떻게 정해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사무국 주최 하에 모인 동업자들간의 단체정신으로 합의된 경락∙경혈에 관한 합의가 역사상 최초였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2006년에 이루어진 경락∙경혈에 관한 최초의 국제적 합의는, 실로 신약성경을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형태로 결정한 ‘카르타고 교회회의(397년)’에 비견될 만한 사태인 것이다. 두 합의 모두 정신몽매자들간의 암묵적 단체정신 하에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시기적으로 경락 및 경혈의 위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조금 더 알아보자. 현존 최고본(最古本) 경락도로 인정받는 것은 마왕퇴한묘(馬王堆漢墓)에서 발굴된 2권의 경락도이다. ‘마왕퇴’란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시(長沙市) 교외에 있는 얕은 구릉인데, 1971년 이 곳에서 고분이 발견되어 중국 당국이 발굴을 행하였다. 3년에 걸친 발굴 결과, 이 무덤이 전한(前漢, 기원전 206년~기원후 8년) 초, 장사국(長沙國)에 살았던 승상과 그의 부인 그리고 그 아들의 가족 묘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100년 전에 조성된 이 무덤에서 보존 상태가 양호한 부인의 미라 및 고고학적 가치가 풍부한 3000여 점의 부장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부장품 중에는 역경(易經), 노자(老子), 전국책(戰國策) 등의 조본(祖本)이라고 할 수 있는 고서적들이 비단 위에 쓴 백서(帛書)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현재 ‘(노자) 도덕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책이 원래는 ‘(노자) 덕도경’이었다는 등의 흥미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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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경락이나 경혈은 도대체 언제, 그리고 누구에 의해서 주장되기 시작한 것일까? ‘황제내경(黃帝內經)’이나 ‘명당공혈침구치요(明堂孔穴針灸治要)’ 등의 중국 고서적에 경락이나 경혈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당연히 그 기원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었는데, 와중에 다음 두 가지 가설이 유력하게 대두되었다.
첫번째 가설은 ‘경락 침자감전현상 기원론’이다. 이것은 시술자가 침을 놓을 때 피시술자가 느끼는 짜릿한 침감이 퍼져나가는 경로를 쫓아가다 보니 어느덧 경락이 발견되었다는 가설이다. 사실 이것은 기가 순환한 결과라기 보다는 침이 신체 내부를 침습하면서 모종의 신경 가닥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두번째 가설은 ‘경락 내경반관 기원론’이다. 이것은 고도의 내공을 쌓은 기공사가 수련시 자신의 체내 진기가 순환하는 경로를 쫓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락이 발견되었다는 가설이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수긍하기 어렵지만, 특히 후자의 경우 판타지적 요소가 지나치게 강하다고 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대 기공사들 역시 이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일 텐데, 그들에 관한 조사부터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조사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성립되기 어렵다. 왜일까. 중국 서적인 ‘황제내경’에 정신감염되어 있는 사람과 조선 서적인 ‘용호비결’에 정신감염되어 있는 사람이 돌렸던 기의 흐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경혈 표준화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경혈의 위치는 ‘지역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꿈을 꾸더라도 기독교에 정신감염된 자들은 그리스도를, 이슬람교에 정신감염된 자들은 마호메트를, 불교에 정신감염된 자들은 붓다를 만난다. 이것은 각 종교에서 주장하는 영적 현상, 영적 인식이라는 것이 선험(先驗)적인 것이 전혀 아니고 경험(經驗)적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매우 불행하게도 이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종교인은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에 감염되었으니까 한국말을 할 뿐이고, 영미권에서 태어나 영어에 감염되었으니까 영어를 쓸 뿐이다. 즉, 티베트 깡촌에서 서양 TV나 책 한 번 못 보고 자란 아이, 티베트 불교 이외의 여타 종교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를 듣거나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는 ‘붓다’나 ‘달라이 라마’ 등의 이미지만 두뇌 속에 존재하므로 자신의 꿈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누군가 실제로 자신의 몸 안에서 기를 순환시키고 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아는 대로 혹은 믿는 대로, 즉 자신이 정신감염된 대로 돌리고 있다.
경락이나 경혈 문제를 다룰 때 이러한 ‘지역적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시기적 차이’이다. 우리는 막연히 고대중국의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14경락(임맥과 독맥 포함), 361경혈이 고대로부터 확고부동하게 정해져 내려왔을 것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경락의 개수, 경혈의 위치 및 경혈의 소속 경락 등은 끊임없이 변화했기 때문에 그 차이가 비단 지역적 편차의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경락 및 경혈이 언제, 어떻게 정해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사무국 주최 하에 모인 동업자들간의 단체정신으로 합의된 경락∙경혈에 관한 합의가 역사상 최초였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2006년에 이루어진 경락∙경혈에 관한 최초의 국제적 합의는, 실로 신약성경을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형태로 결정한 ‘카르타고 교회회의(397년)’에 비견될 만한 사태인 것이다. 두 합의 모두 정신몽매자들간의 암묵적 단체정신 하에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시기적으로 경락 및 경혈의 위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조금 더 알아보자. 현존 최고본(最古本) 경락도로 인정받는 것은 마왕퇴한묘(馬王堆漢墓)에서 발굴된 2권의 경락도이다. ‘마왕퇴’란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시(長沙市) 교외에 있는 얕은 구릉인데, 1971년 이 곳에서 고분이 발견되어 중국 당국이 발굴을 행하였다. 3년에 걸친 발굴 결과, 이 무덤이 전한(前漢, 기원전 206년~기원후 8년) 초, 장사국(長沙國)에 살았던 승상과 그의 부인 그리고 그 아들의 가족 묘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100년 전에 조성된 이 무덤에서 보존 상태가 양호한 부인의 미라 및 고고학적 가치가 풍부한 3000여 점의 부장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부장품 중에는 역경(易經), 노자(老子), 전국책(戰國策) 등의 조본(祖本)이라고 할 수 있는 고서적들이 비단 위에 쓴 백서(帛書)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현재 ‘(노자) 도덕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책이 원래는 ‘(노자) 덕도경’이었다는 등의 흥미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또, 부장품 중에는 인도의 입식 요가와 비슷한 체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도인도(導引圖) 및 2권의 경락도(經絡圖)도 있었다. 역시 모두 ‘비단 위에 그린 백화(帛畵)’였다. 후일 2권의 경락도는 ‘족비십일맥구경(足臂十一脈灸經)’과 ‘음양십일맥구경(陰陽十一脈灸經)’으로 명명되었다. 우리는 이 두 경락도에 현재 통용되는 경락 가설과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 담겨있다는 점 – 심지어 이 둘끼리도 서로 다르다 -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왕퇴에서 발굴된 두 경락도와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경락도의 차이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마왕퇴 경락도는 경락(=경맥)의 수가 11개로 지금보다 3개 적으며 그 명칭도 현재와는 완전히 다르다.
둘째, 마왕퇴 경락도에 존재하는 11개의 경락들은 오늘날처럼 이어져있지 않고 끊어져있다. 따라서, 기의 주행 방향이 현재와 완전히 다르다.
셋째, 마왕퇴 경락도에는 개략적인 기의 흐름을 나타내는 경락처럼 보이는 선상분포(線狀分布)만 존재할 뿐 경혈점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있다.
마왕퇴 경락도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어느 중국인의 초기 습작 쯤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것을 왜 하필 비단 위에 쓰거나(帛書) 그렸을까(帛畵). 이는 ‘마왕퇴’가 위치한 호남성이 중국산 비단이 인도로 오가는 실크로드의 초기 경유지 중 하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당연하다 할 것이다. 비단만 왔다갔을까. 신비한 에너지나 그 에너지가 흐른다는 통로 및 센터에 대한 관념론이나 아이디어도 오갔을 것이다.
마왕퇴에서 발굴된 두 경락도와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경락도의 차이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마왕퇴 경락도는 경락(=경맥)의 수가 11개로 지금보다 3개 적으며 그 명칭도 현재와는 완전히 다르다.
둘째, 마왕퇴 경락도에 존재하는 11개의 경락들은 오늘날처럼 이어져있지 않고 끊어져있다. 따라서, 기의 주행 방향이 현재와 완전히 다르다.
셋째, 마왕퇴 경락도에는 개략적인 기의 흐름을 나타내는 경락처럼 보이는 선상분포(線狀分布)만 존재할 뿐 경혈점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있다.
마왕퇴 경락도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어느 중국인의 초기 습작 쯤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것을 왜 하필 비단 위에 쓰거나(帛書) 그렸을까(帛畵). 이는 ‘마왕퇴’가 위치한 호남성이 중국산 비단이 인도로 오가는 실크로드의 초기 경유지 중 하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당연하다 할 것이다. 비단만 왔다갔을까. 신비한 에너지나 그 에너지가 흐른다는 통로 및 센터에 대한 관념론이나 아이디어도 오갔을 것이다.
더 괴이쩍은 것은 마왕퇴 출토 경락도보다 명백히 후기에 성립된 ‘황제내경’과 ‘명당공혈침구치요’에 등장하는 내용끼리도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이렇게 네 자료에 등장하는 경락∙경혈도들이 단순 보완∙발전 수준이 아닌 상충할 정도로까지 차이가 난다는 것은 경락의 기원에 관한 두 가설 모두 허구일 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경락 침자감전현상 기원론’이나 ‘경락 내경반관 기원론’의 주장이 맞다면 이 침∙뜸 피시술자나 기공사는 이렇게 느끼고, 저 침∙뜸 피시술자나 기공사는 저렇게 느끼고, 그 침∙뜸 피시술자나 기공사는 그렇게 느꼈다는 말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제멋대로인 데이터를 우리가 신뢰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전혀 없다.
현재 고대중국의학의 모든 경락 및 경혈은 피부에 표시되어 있다. 침 시술 역시 경혈 자리의 피부에 3~4mm 정도만 찌를 뿐이다. 이렇게 경락 하나하나가 각각 인체 내부의 ‘장기 혹은 단전 등의 에너지 센터’ - 이마저도 장기에 연결된다는 것인지 에너지 센터에 연결된다는 것인지 중구난방 - , 하여튼 모처와 연결되어 있어 기가 순환한다는 것이 그 핵심 주장인데, 막상 각각의 경락이 인체 내부의 ‘장기 혹은 단전 등의 에너지 센터’와 어디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것에 관한 통로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냥 살거죽을 타고 빙 경락도를 이어 놓았을 뿐이다.
쉽게 말해 뜨거운 물을 공급한다는 내부 보일러(= 장기 혹은 단전 등의 에너지 센터)는 있는데, 이 내부 보일러에서 공급되는 뜨거운 물을 외부까지 보내준다는 통로가 하나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저 살가죽에만 줄이 그어져있고 점이 찍혀 있을 뿐이다. 이 둘이 당최 이어져있지를 않는데, 대관절 기가 어느 루트로 공급되어서 살거죽의 경락을 타고 돈다는 말인가.
고대중국의학 몽매자는 이렇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체는 신비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통로를 통해 돌고 있으며 그걸 굳이 그림으로 명시할 필요가 없다. 대체 눈에 보이지 않는 통로를 통해 돌고 있고 굳이 그림으로 명시할 필요가 없다면 어찌하여 살거죽에는 그다지도 섬세하게 경락도를 그려 놓았단 말인가. 차라리 쇼를 해라, 쇼를.
이렇게 표피(表皮)에 표시된 경락∙경혈과 심부(深部)의 장기 혹은 단전 등의 에너지 센터가 서로 겉돌게 되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필자는 추론하고 있다. 첫째, 인체에 대한 해부학 지식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느 곳과 어느 곳을 이어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을 것이다. 둘째, 인체는 부피가 있는 입체인데 부피가 없는 평면(비단, 종이 등등)에만 경락∙경혈도를 그려야 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3D 구현 기술이 없어서 2D로 해치우려다보니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애초 ‘인체 심부에 있다고 상상한 에너지 센터’와 연결된다는 통로를 표피에 표시해가면서 잇고, 후일 습득하게 된 빈약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 모호한 에너지 센터를 구체적 장기의 이름으로 대체시키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여러 모순들을 해결하려고 용을 쓴 것이 고대중국의학 경락∙경혈 창작론의 전개 과정이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88,000개의 차크라가 있다는 둥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지 사람 피부를 바둑판으로 쓰는 지경까지는 안 갔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경락의 기원에 관한 기존 2종 가설에 반대하며 ‘경락 대뇌피질 기원론’을 제시한다. 경락∙경혈은 고대 중국인들의 대뇌피질에서 ‘아포페니아’적 성향이 발휘된 결과일 뿐이라는 뜻이고,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정신줄, 정신점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마치 신화나 별자리처럼. 각기 다른 초기 버전의 신화나 별자리가 강력한 정신매개자에 의해서 취합되었듯이 경락∙경혈 역시 어느 타이밍에선가 누군가에 의해 통일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통일이 완벽하지 않았다. 2006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경혈 위치를 표준화하기 전까지 그렇게나 긴 세월 동안 말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MRI’나 ‘싱크트론 X-ray’같은 첨단 검사 장비로 기나 경혈의 존재를 찾아보겠노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쓴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니콘 카메라로 ‘토르’나 ‘야훼’를 찍어보겠다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대관절 아이디어가 찍힐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증명되지도, 증명할 수도, 심지어 증명할 필요조차 없으나 이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해당 정신에 몽매들린 자에게 혼구멍이 나게 되는 '헛소리' 혹은 '관념론적 신념 체계'를 일컬어 우리는 '도그마'라 부른다.
현재 고대중국의학의 모든 경락 및 경혈은 피부에 표시되어 있다. 침 시술 역시 경혈 자리의 피부에 3~4mm 정도만 찌를 뿐이다. 이렇게 경락 하나하나가 각각 인체 내부의 ‘장기 혹은 단전 등의 에너지 센터’ - 이마저도 장기에 연결된다는 것인지 에너지 센터에 연결된다는 것인지 중구난방 - , 하여튼 모처와 연결되어 있어 기가 순환한다는 것이 그 핵심 주장인데, 막상 각각의 경락이 인체 내부의 ‘장기 혹은 단전 등의 에너지 센터’와 어디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것에 관한 통로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냥 살거죽을 타고 빙 경락도를 이어 놓았을 뿐이다.
쉽게 말해 뜨거운 물을 공급한다는 내부 보일러(= 장기 혹은 단전 등의 에너지 센터)는 있는데, 이 내부 보일러에서 공급되는 뜨거운 물을 외부까지 보내준다는 통로가 하나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저 살가죽에만 줄이 그어져있고 점이 찍혀 있을 뿐이다. 이 둘이 당최 이어져있지를 않는데, 대관절 기가 어느 루트로 공급되어서 살거죽의 경락을 타고 돈다는 말인가.
고대중국의학 몽매자는 이렇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체는 신비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통로를 통해 돌고 있으며 그걸 굳이 그림으로 명시할 필요가 없다. 대체 눈에 보이지 않는 통로를 통해 돌고 있고 굳이 그림으로 명시할 필요가 없다면 어찌하여 살거죽에는 그다지도 섬세하게 경락도를 그려 놓았단 말인가. 차라리 쇼를 해라, 쇼를.
이렇게 표피(表皮)에 표시된 경락∙경혈과 심부(深部)의 장기 혹은 단전 등의 에너지 센터가 서로 겉돌게 되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필자는 추론하고 있다. 첫째, 인체에 대한 해부학 지식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느 곳과 어느 곳을 이어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을 것이다. 둘째, 인체는 부피가 있는 입체인데 부피가 없는 평면(비단, 종이 등등)에만 경락∙경혈도를 그려야 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3D 구현 기술이 없어서 2D로 해치우려다보니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애초 ‘인체 심부에 있다고 상상한 에너지 센터’와 연결된다는 통로를 표피에 표시해가면서 잇고, 후일 습득하게 된 빈약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 모호한 에너지 센터를 구체적 장기의 이름으로 대체시키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여러 모순들을 해결하려고 용을 쓴 것이 고대중국의학 경락∙경혈 창작론의 전개 과정이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88,000개의 차크라가 있다는 둥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지 사람 피부를 바둑판으로 쓰는 지경까지는 안 갔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경락의 기원에 관한 기존 2종 가설에 반대하며 ‘경락 대뇌피질 기원론’을 제시한다. 경락∙경혈은 고대 중국인들의 대뇌피질에서 ‘아포페니아’적 성향이 발휘된 결과일 뿐이라는 뜻이고,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정신줄, 정신점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마치 신화나 별자리처럼. 각기 다른 초기 버전의 신화나 별자리가 강력한 정신매개자에 의해서 취합되었듯이 경락∙경혈 역시 어느 타이밍에선가 누군가에 의해 통일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통일이 완벽하지 않았다. 2006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경혈 위치를 표준화하기 전까지 그렇게나 긴 세월 동안 말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MRI’나 ‘싱크트론 X-ray’같은 첨단 검사 장비로 기나 경혈의 존재를 찾아보겠노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쓴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니콘 카메라로 ‘토르’나 ‘야훼’를 찍어보겠다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대관절 아이디어가 찍힐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증명되지도, 증명할 수도, 심지어 증명할 필요조차 없으나 이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해당 정신에 몽매들린 자에게 혼구멍이 나게 되는 '헛소리' 혹은 '관념론적 신념 체계'를 일컬어 우리는 '도그마'라 부른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경락이나 경혈은 후학들에 의해서 얼마든지 새로 첨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손이 신체의 축소판이라며 전고에 없는 경락∙경혈설을 제창한 고려수지침학회회장 ‘유태우 연구인’이라든가, 뇌기맥을 창안한 고(故) ‘문익환 목사’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필자가 소장 중인 ‘더욱 젊게(문익환 著, 사계절 출판사)’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 책은 문익환 목사가 자신의 아버지인 문재린 목사와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당 부분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문재린 목사: 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독기맥, 삼초기맥이 뇌기맥의 일부라는 느낌이 드는구나.문익환 목사는 기존 고대중국의학 육장육부(六臟六腑)론에 뇌라는 장기를 더하여 칠장육부(七臟六腑)론을 완성해 버렸다. 고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우리가 문익환 목사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경락 및 경혈 추가는 ‘아무나’ 할 수 있다. 자기 아이디어에 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문익환 목사: 아버님도 그렇게 느끼시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뇌의 기는 그만큼 강한 거죠. 그 중요한 두 기맥을 시켜 온 몸의 조직을 고루 다 보살피고 돌보는 거니까요.
문재린 목사: 그 수고 얼마나 고맙다고 하면 될까?
문익환 목사: 그런데 직접 뇌와 연관되는 기맥을 저는 두 군데서 찾았습니다.
문재린 목사: 그게 어딘데?
문익환 목사: 첫째는 손톱 밑입니다. 진주교도소에 있을 때, 유태우 씨의 수지침 책을 공부하면서 가운데 손가락 끝 마디가 머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면 뇌기맥이 있다면 그 끝 마디 어디에 있을 거다 싶어서 며칠 가운데 손가락 끝 마디를 들여다 보다가 있을 데라고는 손톱 밑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머지 네 손가락에도 이 기맥 저 기맥이 다 와 있는데, 그 기맥이 손톱 밑에서 뇌와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열 손톱을 가끔 지긋이 눌러 주었습니다.
문재린 목사: 그랬더니?
문익환 목사: 머리의 하늘을 향한 위쪽 전체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아파오더군요. 처음에는 좀 겁이 났지만, 이게 머리의 병이 빠져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눌러주었더니, 한 열흘 지나니까 그 아픔이 사라지더군요.
그런데, 정통파를 자처하는 고대중국의학 측에서 이런 것을 인정해 줄까. 인정 안 해준다. 콧방귀나 뀔 뿐이다. 이미 확립되어 쓰인 지 오래된 14정경(正經)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기독교에서 정경(正經)과 외경(外經)을 분리시켰듯이 ‘고대중국의학 경락교’에서도 정경(正經)과 외경(外經)을 구분해야 할 판이다. 그 과정이 또 얼마나 지루하고 난해하겠는가 말이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대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단 말인가. 자고로 이따위 ‘관념론적 신념체계’에는 표준이나 기준이 없다. 만약 있다면 목소리가 크거나 세력이 큰 쪽이 대개 표준 혹은 기준이 된다.
다음 글 :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8) : 컨디셔닝, 플라시보, 노시보
저자 프로필 :
퇴몽사(退蒙士) 서범석
현재 모 고등학교에서 입학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회기여활동으로서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홍보특별보좌관’도 겸임하고 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성균관-조지타운 대학교 TESOL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넘게 중증 아토피로 고생하며 여러 대체 의학을 접했지만, 그 허상에 눈을 뜬 후 사이비 의‧과학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몽매주의’를 퇴치하는 번역 및 집필 작업에 뛰어들었다.
저서: Q&A TOEIC Voca, 외국어영역 CSI(기본), 외국어영역 CSI(유형), 외국어영역 CSI(장문독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시리즈 / 서범석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특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 : 왜 '한의학'을 '고대중국의학'이라 불러야 옳은가?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2) : 도올 조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3)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4)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②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5) : 뜸사랑 체험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6) : 세계 보건기구(WHO)의 경혈 위치 표준화 작업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7) : 경락 대뇌피질 기원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8) : 컨디셔닝, 플라시보, 노시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9) : 고대중국문명의 플라시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0) : 고대중국의학의 현대적 적응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1) : 고대중국의학의 효과와 한계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2) : 도올 조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3)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4)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②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5) : 뜸사랑 체험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6) : 세계 보건기구(WHO)의 경혈 위치 표준화 작업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7) : 경락 대뇌피질 기원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8) : 컨디셔닝, 플라시보, 노시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9) : 고대중국문명의 플라시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0) : 고대중국의학의 현대적 적응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1) : 고대중국의학의 효과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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