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1일 일요일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색맹 치료, 한의학은 가능?

제목 :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색맹 치료, 한의학은 가능?

부제목 : ‘투명인간’ 만큼이나 허황된 주장



일부 한의원들이 색각이상(색맹, 색약)을 치료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중에는 3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의원도 있다.

색각이상은 과학적으로 유전자 수준까지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어 있어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단순히 치료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할 수 없는 원리가 밝혀져 있다. 과연 한의학의 힘으로 이를 치료해낼 수 있을 법 한지 확인해보자.

휴대폰 액정을 확대해보면 빨강, 파랑, 녹색의 세 가지 촘촘한 점들로 이뤄져있다. 화면에는 수만 가지의 풍부한 색상이 표현되는데 확대시켜보면 오직 세 가지의 색깔만이 존재한다. 우리 눈에 인식되는 다양한 색상은 사실 세 가지 화소의 밝기를 상대적으로 조정한 결과다.

갤럭시S3의 액정화면을 확대한 모습
▲ 갤럭시S3의 액정화면을 확대한 모습


우리 눈은 망막에 있는 빨강, 파랑, 녹색에 민감도가 높은 세 가지 종류의 원뿔세포가 받아들인 빛 자극의 세기를 상대적으로 평가해 색깔을 인식한다. 예를 들어, 녹색의 물체를 볼 때는 녹색 파장의 빛에 가장 민감한 원뿔세포가 강하게 반응하고 상대적으로 빨강과 파랑에 민감한 원뿔세포들은 반응이 약해 두뇌에서 녹색이라고 판단을 내린다.

색깔이란 각각의 원뿔세포가 반응한 비율을 바탕으로 우리 뇌가 주관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색각이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유전자 수준까지 완전히 규명되어 있다. 색각이상은 CNGA3, CNGB3, GNAT2, OPN1LW, OPN1MW, OPN1SW와 같은 유전자에 변이가 있어 정상 단백질을 만들지 못해 발생한다.

색각이상이 나타나는 이유

정상 유전자를 가진 경우 각기 다른 세 가지 파장의 빛에 민감도가 다른 세 종류의 원뿔세포가 존재해 색 구별이 가능하다.

반면 색각이상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적록색약의 경우 녹색에 가장 민감해야 할 원뿔세포가 유전적 결함으로 빨간색 파장에 민감해 세 가지 파장을 분별하지 못하고 파랑과 빨강 두 가지 파장만 분별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변형된 녹색 원뿔세포가 빨강 원뿔세포와 정확하게 같은 파장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고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색 분별력이 떨어지기는 해도 차이를 인식할 수는 있다.

적록색약은 녹색에 반응하는 단백질에 결함이 생긴 것인데 이 유전자는 X염색체에 위치하고 있어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진 남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아래 그림은 녹색원추세포가 없는 제2색맹(녹색맹)인 사람이 인식하는 색깔을 보여준다. 제2색맹인 사람은 위와 아래 그림이 똑같게 보인다. 뒤집어 생각한다면 휴대폰 액정화면에 빨강, 파랑, 녹색이 아닌 빨강, 파랑 두 가지의 화소만 있어 색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2색맹(녹색맹)인 사람에게는 위쪽의 스펙트럼이 아래쪽 그림과 같게 보인다
▲ 제2색맹(녹색맹)인 사람에게는 위쪽의 스펙트럼이 아래쪽 그림과 같게 보인다


색각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한 이유

애초에 색을 인지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명령어에 오류가 있는 셈이라 치료를 위해서는 망막 에 있는 각각의 원뿔세포마다 명령어(유전자)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 세포마다 가지고 있는 유전체(게놈)에 적힌 30억 개의 글자 중에서 틀린 글자 하나를 찾아내 고쳐야 하는 셈이다. 현재까지는 이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연구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유전자 결함을 고치는 치료를 유전자 치료(gene therapy)라고 한다. 아데노바이러스를 사용해 정상 유전자를 삽입하는 등의 유전자치료법이 연구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실험적으로 성공한 사례들이 발표되고 있는 미완성의 기술이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색각 이상을 가진 경우 두뇌의 발달과정에서 색깔을 인식하는 회로가 발달되지 않아 원뿔세포의 기능을 고친다고 하더라도 두뇌에서 처리를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2009년 미국 연구팀이 선천적으로 적록색맹인 원숭이를 대상으로 유전자 치료 실험에 성공해 색깔을 구별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Nature에 보고해 치료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미래에는 색각이상 치료가 가능해지겠지만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는 시도된 적이 아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고칠 수 있는 유형의 후천적 색각이상도 있지 않을까?

눈에미소안과 권계랑 원장에 따르면 "후천적으로 색각이상이 발생하려면 시력은 정상이면서 색깔을 인식하는 원뿔세포만 선택적으로 손상되어야 하는데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한다. 색각이상이 후천적으로 발생해 치료를 받고 회복하기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의학적으로 가능?

이렇게 연구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최첨단의 치료법이 필요한 색각이상 치료를 한의원에서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색각이상 치료를 30년 이상 해왔다는 밝은눈한의원 홈페이지에는 "경혈을 자극하여 울체된 기혈을 풀어주고", "오장육부의 기혈은 모두 눈에 관계되기 때문에 장부의 허실을 조정"해서 치료한다고 주장한다.

색각이상 치료 전문이라는 만성한의원 인터넷 카페의 자료에 따르면 "<內經 靈樞>에 보면 ‘간의 기운은 눈에 나타나는데, 간이 건강해야 눈이 색깔을 잘 구분할 수 있다(肝氣通於目 肝和則 目能辨五色矣)’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눈이 간장(肝臟)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라고 고서를 인용하며 간과 담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눈으로 기운이 잘 통하게 해 치료한다고 설명한다.

사람 눈이 똑같은데 과학적 색맹과 한의학적 색맹이 따로 있다는 것인지, 경혈을 자극시켜 장기를 활성화시키면 최첨단의 유전자치료 없이도 유전자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보건당국의 직무유기

인터넷 상에 제시된 의견들 중에는 색각이상을 검사하는 검사표를 훈련 과정이라며 침을 꽂은 상태에서 외우게 했다는 주장이 있다. 한의학적 치료의 비결은 색각 검사표 암기일까?

애초에 색각표를 이용한 검사 자체가 정확도가 떨어져 정상인 사람이 색각이상으로 잘못 알고서 치료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과학이 명백하게 밝혀놓은 색각이상은 다른 설명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과학적 색맹과 한의학적 색맹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한의사가 동의보감에 나온 처방을 투명인간을 만들어주겠다고 많은 돈을 요구한다면 그건 사기일까 아닐까? 한의사가 한의학 서적을 근거로 색맹을 치료할 수 있다며 비싼 치료비를 받으면 사기일까 아닐까?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투명인간 만큼이나 색맹 치료도 허황된 주장에 불과하다.

한의원의 색맹 치료 주장을 비판하는 1988년 8월 4일자 동아일보 독자투고란
▲ 한의원의 색맹 치료 주장을 비판하는 1988년 8월 4일자 동아일보 독자투고란


보건당국의 철저한 검증과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의사면허는 사기 행위의 면죄부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

색맹을 치료한다는 한의원의 주장은 수십년전부터 언론에 소개되었고 여기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한의학계에서는 색맹 치료의 근거를 내놓지 않았음에도 치료할 수 있다고 버젓이 환자를 받는 한의원들이 "30년 전통"을 가지고 영업을 한다.

과학적으로 명백히 불가능한 주장을 하며 치료비를 받는 한의원들의 존재는 국민을 의료사기로부터 지켜낼 의무를 지닌 보건당국의 직무유기를 증명하는 모습이 아닐까.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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