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미 쇠고기협상은 진정 졸속협상이었나?
부제목 : 눈초의‘새로운 광우병 이야기’(27)
- 양기화 의학박사 yang412@hanmail.net
- 등록 2012.08.07 15:43:16
MBC‘PD수첩-광우병’편을 연출한 송일준PD와 김보슬PD는 프로그램 중 우리정부 한미 쇠고기협상단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전, 한미 쇠고기협상 결과로 지금까지는 들여올 수 없었던 편도와 회장원위부를 제외한 5가지 특정위험물질을 들여올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뇌에는 가장 광우병위험물질이 많이 들어 있고요. 그 다음에 척수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위가 30개월 이하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데…”라는 수의사연대 박상표 국장 인터뷰가 나온다. 마치 광우병 원인물질이 가득 찬 뇌와 척수가 우리식당에 쫙 깔리게 될 것처럼 말이다.
앞서도 몇 차례 지적했지만, 소의 척수는 식당에서도 단골에게만 특별하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특히 신선한 상태에서 먹어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해서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미식가들이 일부러 찾기도 한다. 당연히 막 잡은 한우에서 나온 것이라 강조하고 내는 판이다. 사정이 이런데, 냉동상태로는 어림도 없고 냉장상태로 수입했다 하더라도 미국소 척수가 한우 척수와 맛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시청자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배려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어 김보슬PD는 미국의 도축시스템에 대해 과연 우리정부가 그 실태를 본 적이 있는지, 보려는 노력이나 했는지 그것도 의문이라고 운을 떼면서, 가축방역협의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춘근PD와 남호경 전국한우협회 회장의 문답으로 짚었다. 그리고 박홍수 전 농림부장관은“졸속협상이었다.”고 마무리했다.
정부협상과정 문제를 지적하면서 송일준, 김보슬PD는“국민들의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인데 우리정부가 너무 안이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 협상결과를 보면 과연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면서“정부가 미국의 실정을 잘 몰랐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그 위험성을 오히려 은폐하고 축소하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인상, 사실 협상 팀이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지가 의문, 이런 상황인데 따지고 또 따지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랄 판인데 어떻게 해서 이번에 미국쇠고기 수입에 이런 협상결과가 나왔는지, 과거 친일 매국노들처럼 오늘 혹 우리 자신은 특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방송내용에 대한 일반시청자들 반응은“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는 것은 정부가 미국의 도축시스템에 대한 실태를 보지 않아 그 위험성을 모르고 있거나 그 위험성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위험성을 일부러 은폐하거나 축소”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식탁에 오르내린 사연을 정리해보자. 오랜 동안 우리식탁에서 쇠고기는 아주 귀한 식품이었다. 명절 때, 집안어른 생일 때나 먹을 수 있었다. 쇠고기로 국을 끓여먹을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산업화되고 수출입이 활발해진 1970년대에 이르러 외국의 값싼 쇠고기가 수입되기에 이르렀다. 1976년 육류수출동향을 보면, 주로 일본에 수출하던 한우는 17만 달러 규모였는데 반해 대부분 호주에서 수입되던 쇠고기는 65만 달러 규모에 달했다. 이 같은 쇠고기 수입은 국내축산농가의 반발을 불러왔지만, 소비자입장에선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어 국민영양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다 1980년대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쇠고기 소비가 빠르게 늘기 시작, 2000년엔 연간 40만 톤이 소비됐다. 쇠고기 자급율은 1990년 52.5%에서 늘기 시작해 1998년엔 75.4%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계속 떨어져 2003년엔 36.0%에 이르렀다. 이 같은 감소엔 한우사육에 필요한 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축산업계 구조적 문제가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한우는 수입쇠고기와의 가격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그 쇠고기 수입동향을 국내축산농가를 고려해 조절했기에 미국이나 호주 등 쇠고기 수출국가들과 자주 통상마찰을 빚곤 했다.
1970년대 한국에서 수입하는 쇠고기는 호주산, 미국산, 뉴질랜드산 등이었지만 대부분은 호주산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미국산 쇠고기 비중이 늘기 시작해 1990년 중반엔 미국산 쇠고기 수입비중이 호주산을 넘어 가파르게 증가했다. 2003년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쇠고기는 약 20만 톤(이 해 우리나라 전체 쇠고기 수입물량은 29만 톤으로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8%)으로 8억5000만 달러 어치에 달했고, 한국은 37만 톤을 수입한 일본, 33만 톤을 수입한 멕시코에 이어 미국의 3대 쇠고기 수출국으로 부상하게 됐다.
이처럼 한국시장을 주도하던 미국산 쇠고기는 2003년 12월24일 워싱턴주에서 광우병에 걸린 6년6개월짜리 홀스타인 젖소가 발견되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 이 소는 정형 광우병으로 판명됐고 캐나다에서 송아지로 수입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에 우리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검역을 즉각 중단한데 이어 수입금지조처까지 취했다. 일본, 멕시코, 홍콩, 중국,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등 미국산 쇠고기 주요수입국가들 역시 수입금지조처를 취했다.
이는 미국 북서부 몬태나주와 네브라스카주로부터 중부의 위스콘신주에 이르기까지 소를 사육하는 광범위한 목축지대의 생존에 관한 문제였기에, 미국정부는 즉각 광우병발생을 감시하고 차단하는 각종 대책을 마련했다. 그리고는 주요 쇠고기 수입국가들에 수입재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2004년엔 멕시코와 베트남이 뼈 없는 살코기의 수입을 재개했다.
이런 미국정부의 노력은 2004년 11월 텍사스주와 2006년 2월 앨러배마주에서 광우병 감염소가 발견돼 물거품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두 마리 광우병소가 각각 12살과 10살로 사료금지조처 이전에 출생한 소였고, 정밀조사결과 비정형 광우병으로 밝혀져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육골분 오염사료에 의한 광우병과 관련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한편 미국으로부터 뼈 없는 쇠고기를 수입하던 베트남과 멕시코는 2006년부터 뼈 있는 쇠고기도 수입하게 됐다.
2003년 수입이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재개가 국내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FTA 필요성이 제기된 2004년부터다. 이해 11월 열린 한미통상실무회의에서 미국 측이 쇠고기 수입재개를 요구해왔다. 미국은 한미FTA‘4대 선결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건강보험 약가 현행유지,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완화 그리고 쇠고기 시장개방 등을 내걸었다. 미국으로선 쇠고기 수출재개가 중요한 이슈였던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관련해 2005년 2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한미 광우병전문가 협의회가 열렸다. 6월엔 국내 전문가들이 미국현지를 방문, 농장과 사료공장 등을 조사했다. 이 같은 사전준비작업이 진행된 끝에 2005년 7월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점검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2005년 12월14일 열린 가축방역협의회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한우협회 등 생산자단체의 반발로 수입재개여부에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결국 3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로 제한을 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합의한 것이 2006년 1월이다. 한미FTA협상은 2006년 6월5일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2006년 2월 알러배마주에서 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 10월30일 미국으로부터 뼈 없는 30개월 미만 쇠고기가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됐다.
하지만 이 당시 우리 검역당국은 X-선 투시기를 동원한 검역과정에서 작은 뼈 조각이 나왔다는 이유로 전량 반송 조처했으며, 이어 11월23일 수입된 물량에서도 손톱크기의 뼈 조각 3개가 나왔다는 이유로 전량 반송 조치했다. 반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정부는“미국산 쇠고기 검역체계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일본 양국정부가 안전성이 담보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데 동의, 서류검사에 기반한 검역체계로 수입물량 4%에 대한 관능검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엄격한 한국정부의 검역체계는 미국정부의 반발을 부르게 됐다.
2008년 협상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 완결돼 최종승인을 남겨두고 있던 것을 마무리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나 언론 모두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입장이 바뀌었다고 말까지 바꾸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앞서도 몇 차례 지적했지만, 소의 척수는 식당에서도 단골에게만 특별하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특히 신선한 상태에서 먹어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해서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미식가들이 일부러 찾기도 한다. 당연히 막 잡은 한우에서 나온 것이라 강조하고 내는 판이다. 사정이 이런데, 냉동상태로는 어림도 없고 냉장상태로 수입했다 하더라도 미국소 척수가 한우 척수와 맛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시청자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배려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어 김보슬PD는 미국의 도축시스템에 대해 과연 우리정부가 그 실태를 본 적이 있는지, 보려는 노력이나 했는지 그것도 의문이라고 운을 떼면서, 가축방역협의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춘근PD와 남호경 전국한우협회 회장의 문답으로 짚었다. 그리고 박홍수 전 농림부장관은“졸속협상이었다.”고 마무리했다.
정부협상과정 문제를 지적하면서 송일준, 김보슬PD는“국민들의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인데 우리정부가 너무 안이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 협상결과를 보면 과연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면서“정부가 미국의 실정을 잘 몰랐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그 위험성을 오히려 은폐하고 축소하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인상, 사실 협상 팀이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지가 의문, 이런 상황인데 따지고 또 따지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랄 판인데 어떻게 해서 이번에 미국쇠고기 수입에 이런 협상결과가 나왔는지, 과거 친일 매국노들처럼 오늘 혹 우리 자신은 특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방송내용에 대한 일반시청자들 반응은“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는 것은 정부가 미국의 도축시스템에 대한 실태를 보지 않아 그 위험성을 모르고 있거나 그 위험성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위험성을 일부러 은폐하거나 축소”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식탁에 오르내린 사연을 정리해보자. 오랜 동안 우리식탁에서 쇠고기는 아주 귀한 식품이었다. 명절 때, 집안어른 생일 때나 먹을 수 있었다. 쇠고기로 국을 끓여먹을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산업화되고 수출입이 활발해진 1970년대에 이르러 외국의 값싼 쇠고기가 수입되기에 이르렀다. 1976년 육류수출동향을 보면, 주로 일본에 수출하던 한우는 17만 달러 규모였는데 반해 대부분 호주에서 수입되던 쇠고기는 65만 달러 규모에 달했다. 이 같은 쇠고기 수입은 국내축산농가의 반발을 불러왔지만, 소비자입장에선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어 국민영양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다 1980년대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쇠고기 소비가 빠르게 늘기 시작, 2000년엔 연간 40만 톤이 소비됐다. 쇠고기 자급율은 1990년 52.5%에서 늘기 시작해 1998년엔 75.4%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계속 떨어져 2003년엔 36.0%에 이르렀다. 이 같은 감소엔 한우사육에 필요한 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축산업계 구조적 문제가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한우는 수입쇠고기와의 가격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그 쇠고기 수입동향을 국내축산농가를 고려해 조절했기에 미국이나 호주 등 쇠고기 수출국가들과 자주 통상마찰을 빚곤 했다.
1970년대 한국에서 수입하는 쇠고기는 호주산, 미국산, 뉴질랜드산 등이었지만 대부분은 호주산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미국산 쇠고기 비중이 늘기 시작해 1990년 중반엔 미국산 쇠고기 수입비중이 호주산을 넘어 가파르게 증가했다. 2003년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쇠고기는 약 20만 톤(이 해 우리나라 전체 쇠고기 수입물량은 29만 톤으로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8%)으로 8억5000만 달러 어치에 달했고, 한국은 37만 톤을 수입한 일본, 33만 톤을 수입한 멕시코에 이어 미국의 3대 쇠고기 수출국으로 부상하게 됐다.
이처럼 한국시장을 주도하던 미국산 쇠고기는 2003년 12월24일 워싱턴주에서 광우병에 걸린 6년6개월짜리 홀스타인 젖소가 발견되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 이 소는 정형 광우병으로 판명됐고 캐나다에서 송아지로 수입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에 우리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검역을 즉각 중단한데 이어 수입금지조처까지 취했다. 일본, 멕시코, 홍콩, 중국,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등 미국산 쇠고기 주요수입국가들 역시 수입금지조처를 취했다.
이는 미국 북서부 몬태나주와 네브라스카주로부터 중부의 위스콘신주에 이르기까지 소를 사육하는 광범위한 목축지대의 생존에 관한 문제였기에, 미국정부는 즉각 광우병발생을 감시하고 차단하는 각종 대책을 마련했다. 그리고는 주요 쇠고기 수입국가들에 수입재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2004년엔 멕시코와 베트남이 뼈 없는 살코기의 수입을 재개했다.
이런 미국정부의 노력은 2004년 11월 텍사스주와 2006년 2월 앨러배마주에서 광우병 감염소가 발견돼 물거품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두 마리 광우병소가 각각 12살과 10살로 사료금지조처 이전에 출생한 소였고, 정밀조사결과 비정형 광우병으로 밝혀져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육골분 오염사료에 의한 광우병과 관련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한편 미국으로부터 뼈 없는 쇠고기를 수입하던 베트남과 멕시코는 2006년부터 뼈 있는 쇠고기도 수입하게 됐다.
2003년 수입이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재개가 국내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FTA 필요성이 제기된 2004년부터다. 이해 11월 열린 한미통상실무회의에서 미국 측이 쇠고기 수입재개를 요구해왔다. 미국은 한미FTA‘4대 선결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건강보험 약가 현행유지,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완화 그리고 쇠고기 시장개방 등을 내걸었다. 미국으로선 쇠고기 수출재개가 중요한 이슈였던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관련해 2005년 2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한미 광우병전문가 협의회가 열렸다. 6월엔 국내 전문가들이 미국현지를 방문, 농장과 사료공장 등을 조사했다. 이 같은 사전준비작업이 진행된 끝에 2005년 7월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점검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2005년 12월14일 열린 가축방역협의회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한우협회 등 생산자단체의 반발로 수입재개여부에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결국 3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로 제한을 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합의한 것이 2006년 1월이다. 한미FTA협상은 2006년 6월5일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2006년 2월 알러배마주에서 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 10월30일 미국으로부터 뼈 없는 30개월 미만 쇠고기가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됐다.
하지만 이 당시 우리 검역당국은 X-선 투시기를 동원한 검역과정에서 작은 뼈 조각이 나왔다는 이유로 전량 반송 조처했으며, 이어 11월23일 수입된 물량에서도 손톱크기의 뼈 조각 3개가 나왔다는 이유로 전량 반송 조치했다. 반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정부는“미국산 쇠고기 검역체계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일본 양국정부가 안전성이 담보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데 동의, 서류검사에 기반한 검역체계로 수입물량 4%에 대한 관능검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엄격한 한국정부의 검역체계는 미국정부의 반발을 부르게 됐다.
2008년 협상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 완결돼 최종승인을 남겨두고 있던 것을 마무리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나 언론 모두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입장이 바뀌었다고 말까지 바꾸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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