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0일 토요일

교통사고 후유증에 어혈침? 과연 효과 있을까

제목 : 교통사고 후유증에 어혈침? 과연 효과 있을까

부제목 : 현대의학에선 이미 폐기된 사혈법, 한의사들만 사용



적혈구 이미지
▲ 적혈구 이미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 엑스레이 촬영을 해도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통증이 지속되는 사례가 있으며, 심지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며칠 지난 후에 목-어깨-허리 부위에 통증이 밀려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를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한다. 후유증 해소에 필요한 건 휴식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휴식을 취하면 통증은 사라지고 손상됐던 근육도 회복된다.

일부 한의원에서는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를 자신하면서 ‘어혈침’을 제안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검색하면 어혈침 치료를 한다고 주장하는 한의원들을 확인할 수 있다.

4체액설(humorism)에 기반한 사혈, 과학적 타당성은?

한의학에서 어혈침은 굳은 피를 뽑아낸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혈액이 체내에서 순환되지 않고 굳어서 덩어리가 될 수 있다는 한의학계의 개념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한의사들의 주장대로 체내에서 피가 굳는다면, 해당 부위에서 심각한 내출혈 또는 염증이 발생해야 한다는 게 현대 의학계의 지적이다. 만약 한의학에서의 ‘혈’의 개념이 현대의학에서 혈액의 개념과 다르다면, 이 역시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논란은 과연 피를 뽑아내는 행위가 질병 치료나 증세 완화에 도움이 되느냐는 문제로 좁혀진다. 피를 뽑아내는 방법의 치료법, 즉 사혈법(bloodletting)은 과거 해부학과 병리학이 발달하기 이전 중세시대 서양 의학에서 이미 애용된 바 있다.

사혈은 중세까지 서양 의학계에서 통용되던 4체액설(humorism)에 기반을 둔 치료법이었다. 미국 공공정책과학탐구센터(The Center for Inquiry Office of Public Policy)가 홈페이지에서 사혈에 대해 밝힌 공식 입장에 따르면, 17세기 유럽인들의 의학 개념은 Galen 등 고대 그리스 의학자들의 추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전통적인 그리스 의학 이론은 질병이 피, 점액, 검은 담즙(black bile), 황답즙(yellow bile)이라는 신체의 네가지 액체의 불균형으로 인해 초래된다고 전제하고 있었다. 각각의 액체는 인체의 장기들, 계절, 원소들과 관련이 있었으며, 열과 습기의 정도와도 연관돼 있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따라서 당시 전통적인 훈련을 받은 유럽 의사들은 차가움/뜨거움과 축축함/마름의 증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 하에 네 액체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사혈(bloodletting), 부황(purging 또는 cupping) 및 약초 치료제를 사용했다.
 

미국암협회(American Cancer Society) 홈페이지
▲ 미국암협회(American Cancer Society) 홈페이지


사혈(bloodletting) 관련 미국 암협회의 입장
▲ 사혈(bloodletting) 관련 미국 암협회의 입장


미국 암협회 “사혈은 효과가 없다고 입증되면서 폐기”

사혈법이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적 접근법에 의해 처음 논파된 건 1800년대 프랑스의 의사였던 피에르 루이스(Pierre Louis, 1787~1872)에 의해서였다. 루이스는 당시 수치계산법(numerical method)에 따라 폐렴에 걸린 환자들을 상대로 실시된 사혈치료 사례들을 분석하고 평가한 결과, 사혈치료의 유용성은 ‘극심한 질환에 한해서만 제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해부학이 발달하면서 4체액설은 완전히 반증됐고 사혈치료 역시 폐기됐다. 실제로 미국 암협회(American Cancer Society)도 공식 문건에서 “사혈은 약 2천년간 치료법으로 사용돼 왔으나 효과가 없는 것이 입증되면서 폐기됐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소비자들이 단순히 허위-과대광고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상당수 환자들은 특정 사이비치료법이 효과가 있으며, 실제로 상태가 호전됐다는 느낌을 경험으로부터 받는다. 이 과정에서 효과가 없는 치료법이 마치 효과가 있는 것처럼 호도될 수 있는 것이다.

인지과학자인 배리 바이어슈타인(Barry L. Beyerstein)은 ‘왜 엉터리 치료법들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Why Bogus Therapies Often Seem to Work)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여기에 대해 명쾌한 이유 몇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 [한국어번역판] 왜 엉터리 치료법들이 종종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

질병의 자연 경과(Natural Course of Disease) 또는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어

우선 첫 번째는 질병의 자연경과(natural course of disease)다. 바이어슈타인에 따르면, 많은 질병들은 자기제어적(self-limiting)이다. 그 상태가 만성이거나 치명적이지 않다고 가정하면, 인체의 자생적인 회복력에 의해 환자의 건강이 회복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히 교통사고 후유증의 경우에 해당되는 근육 및 신경의 통증 역시 자기제어적인 질환에 속한다.

결국 특정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고 규정하려면, 그 전에 해당 치료 이후 상태가 호전된 환자들의 비율이 아무 치료도 받지 않고 자연적으로 치료된 환자들의 그것에 비해 높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아니면 아무 치료도 받지 않았을 경우에 비해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근거라도 대야 할 것이다. 즉, 같은 증상을 가진 대규모의 환자들의 임상 사례들과 관련된 상세한 자료를 내놓지 않는 이상, 그 치료법이 인체의 자연적인 치유력보다 효과가 더 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는 게 바이어슈타인의 지적이다.

바이어슈타인이 언급한 또 한 가지 사실은 많은 질병들이 주기적(cyclical)이라는 점이다. 그는 “외상으로 인한 근육과 신경의 통증 또한 기복이 있는 질환이다. 당연히 환자들은 증상이 심할 경우에 치료를 받으러 온다”며 “이 경우 효과가 없는 엉터리 치료를 받더라도 그 치료 시점이 해당 질병의 자연스러운 상태 호전 시기와 맞아 떨어질 가능성이 계속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호한 치료법으로 인해 플라시보(placebo)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암시, 믿음, 기대, 인식의 재해석(cognitive reinterpretation) 및 관심 돌리기(diversion of attention)의 배합을 통해서 생물학적으로 쓸모없는 치료들을 받은 환자들은 적당한 위안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 일부 플라시보 반응들은 물리적 컨디션의 실제 변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병리학적으로 객관적인 변화가 없었음에도 발생하는 주관적인 느낌의 변화로, 환자들이 더 나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여러 한의원들에서 홍보 중인 어혈침은 위에서 바이어슈타인이 지적한 세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의학계가 어혈침의 효능을 입증하려면, 어혈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근거부터 대야 할 것이다. 그 후에 어떤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어혈침이 작동하는지를 입증해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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